코쿠리코 언덕에서 - 그때 그 아름다운 막장(?) 사랑 이야기 횡설수설 영화리뷰

 원래 저번주에 영화를 네 편 내지는 다섯편을 봐야 했습니다마는, 결국에는 세 편만 보고 말았습니다. 아무래도 도가니는 제가 이런 불편한 이야기는 좀 힘들어 하는 측면이 있고, (분명히 봐야 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만, 그냥 리뷰 안 쓰고 혼자 조용히 보고 오려구요.) 카운트다운은 생각 이상으로 소재가 평이한 느낌이어서 말이죠. 아무튼간에, 이번주에는 조합이 굉장히 특이해졌습니다.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솔직히 이번 작품의 경우는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경우였습니다. 작품의 감독이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닌, 그의 아들이자 게드전기로 인해서 지브리의 후계자 문제를 본격적으로 끌어내게 만든 장본인인 미야자키 고로가 이 작품을 만들어 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한 면모도 있고, 아무래도 게드전기라는 작품에 관해서 제가 실망을 했던 부분들도 있고 해서 아무래도 이번 작품에 관해서 걱정을 굉장히 많이 한 것도 사실입니다.

 
게드전기의 문제는 전 굉장히 좋게 보기는 했습니다만- 너무 내용이 늘어진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작품을 운용하는 데에 있어서 원작을 너무 그대로 가져가면서, 이 것을 애니메이션으로 흥미롭게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에 관해서는 굉장히 소홀했던 작품이기도 해서 말이죠. 이런 문제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발견되는 현상인 동시에 항상 아쉬운 부분으로 지적이 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설마 이 부분을 지브리에서 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바로 이 문제로 인해서 지브리의 후계자 문제가 올라오기도 했고 말입니다.

 
약간 묘한건, 이유는 무엇인지 몰라도 두 번째 기회라는 것이 주어졌다는 겁니다. 제가 헐리우드와 국내 영화의 감독에 관해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만약 데뷔작이 엉망이면 다음에는 영화판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기억을 하고 있었나 봅니다. 바로 이 문제에 관해서 특색이 있었던 것이고 말입니다. 어쨌거나 이번 작품은 굉장히 특별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미야자키 고로나 지브리의 앞날에 관한 점 모두에서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브리와 고로가 선택한 것은 의외로 과거의 기본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지브리가 한 때 후계자 문제로 과거에 이미 한 번 이야기가 나왔을 시절의 방식을 다시금 가져오는 그때 그 느낌 말입니다. 당시에 모치즈키 모토미라는 사람이 바다가 들린다를 만들었고, 이후에 콘도 요시후미가 감독을 맡아 귀를 기울이면 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던 것이죠. 바로 이 시절의 이야기 방식을 다시금 끌고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굉장히 묘한 점이라고 한다면, 이때는 지브리가 상상의 세계 보다는 좀 더 사랑과 우정에 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했던 시절이라는 겁니다. 이 시절에는 환상의 세계가 배제되고, 그 자리에 현실세계의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좀 더 많이 가져 온 것이죠. (물론 이 사이에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같은 작품도 있기는 합니다.) 이 두 작품은 지브리에서 지브리 작품이 오직 아이들만을 타겟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시기이기도 합니다.

 
코쿠리코 언덕에서 라는 작품은 바로 이 시기의 느낌을 재현하는 방향으로 작품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약간의 차이라고 한다면, 이 작품은 시대극적인 경향이 좀 있다는 것이죠. 이 문제는 뒤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고, 지금은 일단 이 작품에서의 사랑 이야기를 좀 더 집중적이고 더 유려하게 다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에는 지브리가 스스로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보여주는 방식이 된 것이죠.

 실제로 이 작품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런 작품과는 굉장히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환상속의 동물이나 집도 없고, 길 잃어서 어딘가 다른 세계로 가는 것도 아니죠. 이 작품은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여, 그 시절에 있었을 법한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를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이 작품은 현실의 세계를 다루고, 청춘의 사랑을 다루면서, 시대적인 특성마져도 끌어들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속을 채우는 것은 굉장히 지고지순하지만 충격적인 면이 있는, 그러면서도 현실의 어느 세계에서 있을 법한 그런 세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이 세계 속에서 캐릭터들이 어떤 삶은 살고 있는지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죠. 물론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것은 작품에서 필요로 하는 과거 사실들의 굉장히 단편적인 부분들 뿐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굉장히 현실적인 면을 가지고 들어가는 그런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현실 속의 캐릭터들이 펼치는 이야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소탈한 이야기입니다. 전쟁 이후에 성장해 가는 일본을 보여주고, 그 여파의 막바지에 서 있던 사람들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등장을 시킨 것이죠. 약간 애매한 부분이자 어떤 분들에게는 좀 더 확대 해석이 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전쟁에 관해서 미화시키는 것도 아니고 비판하는 것도 아닌, 그저 도구로 이용을 하게 됩니다. 결국에는 두 사람의 사랑에 집중하고, 이 두 사람의 사랑이 얼마나 다사다난한 것인지에 관해서 보여주기 위한 도구인 것이죠.

 
이 작품은 이런 도구들을 가지고 굉장히 유려하게 움직입니다. 그렇다고 현란한 것은 아닙니다. 굉장히 소탈하고 현실적인 느낌을 다가가는데, 이것이 오히려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에서는 크게 벌이는 것이라고는 누군가의 향수와 현재의 발전이라는 두 괴리 사이에 벌어진 사건에 관해서 다루는 정도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부분들이 그렇게 크게 벌어지는 부분은 아닙니다.

 
이 작품은 이런 부분들을 디테일로 사용을 합니다. 이 디테일의 경우는 그들의 사랑 속에서 그들이 어떻게 만나고, 그리고 둘의 만남의 공간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이 만남의 공간이 또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관해서 매개로 등장을 하게 됩니다. 사실 이 매개라는 것은 최근의 지브리 경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런 생김새를 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이는 요즘의 지브리를 상징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이 역시 뒤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 디테일은 모두 시대적인 경향에서 보여주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일본이 결국에는 다시금 발전하기 시작한 시대의 이야기이고, 이 시기에 얼마나 일이 복잡하게 돌아가는지에 관해서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이 시대적인 경향은 작품 내에서 디자인과 스토리와는 다른 또 다른 디테일을 채우고 있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이 작품에서는 당시에 어떤 느낌이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표현했는지같은 것들 역시 섬세하게 다루고 있죠.

 
이는 스토리 속에서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스토리에서 이 부분들이 작동하는 것은 결국에는 이야기가 예전이 좋았지 하는 부분이 될 수도 있기는 합니다만, 이 작품은 이런 것들을 굉장히 효과적으로 피해가면서, 동시에 디테일로서는 훌륭하게 작용을 하게 만듭니다. 이 속에 담겨 있는 사랑은 지고지순하지만, 낡아서 닳아빠진 그런 느낌의 사랑이 아닌, 누구에게라도 먹힐 만한 그런 사랑 이야기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 것은 현 지브리의 경향과도 맞닿아있고 말입니다.

 
지브리의 새로운 경향은 결국에는 두 인물간의 공감과 그 사이의 발전을 자세하게 보여주면서도 소품처럼 보이게 만드는 그런 경향이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딛힘이라는 것은 굉장히 미묘한 부분으로서, 결국에는 작품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데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굉장히 현대적으로 보여줌으로 해서 오히려 요즘 사람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게 작품을 조절을 하는 것이죠.

 
문제는 이 경향이 아직까지는 약간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 부분이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이야기 방식에 관해서 어느 정도 균형 문제에 관해서 계속해서 사람들의 호불호를 야기하는 부분이 되기도 하죠. 어려운 부분인 동시에, 지브리에게는 좀 더 문제가 되는 부분이라고 인식이 되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을 그래도 꽤 잘 해결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완벽하게 정립이 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하는 것이 이 작품이죠. 사실 이런 문제에 관해서 요즘 작품이 감정선을 뚜렷하게 요구하는 가운데, 이야기는 약간 고풍스럽게 가져간다고 하는 관점에서 진행을 한다고 한다면, 균형 문제가 발목을 잡는 것은 당연한 부분입니다. (이는 시대극과는 또 다른 문제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문제가 이 작품에서 크게 걸림돌로 작용하지는 않습니다. 이 작품의 느낌이 원체 굉장히 소탈하고 현실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부분이 공존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에 관해서 그래도 적당히 균형을 잡아 가고 있는 부분이 돋보이는 작품이니 말입니다. 작품이 기승전결이 좀 약하다고 할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 우리 사는 세계에 모든 일이 기승전결이 확실하지 않은 것처럼, 그리고 이 작품의 낭만을 기승전결로 확실히 나눌 때의 그 작위적임을 결국에는 버려야 했던 것 때문에 이 작품은 바로 이런 스타일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택했으면 잘 해야 하는데, 다행이 이 문제는 그래도 해결을 봤다고 보고 말입니다.

 
비쥬얼 문제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지브리입니다. 말 그대로 최고의 화면을 보여주는 그런 작품들을 만드는 스튜디오의 최신작이죠. 이 작품 역시 이런 경향에 따라 굉장히 회화적이고, 어느 면에서는 거의 예술에 가까운 경지의 화면을 보여줍니다. 다만 과거의 경향을 어느 정도 합성하는 동시에, 요즘에 자주 끌어들이는 유럽적인 느낌을 어딘가에 투영하는 것을 여전히 잊지 않죠. 이 두 느낌을 공존하게 하는 화면을 가지기는 쉽지 않지만, 이 작품에서는 사랑과 옛것이라는 또 다른 주제를 해결 하는 데에 이런 화면들을 굉장히 유려하게 활용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이런 작품에 관해서 길게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죠. 지브리는 세대 교체를 해야 하는 상황이고, 다른 답안을 내 놓은 두 사람이 존재합니다. 제가 볼 때는 두 답안 모두 약간 다른 면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굉장히 괜찮은 답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탈한 느낌과 사실적인 면, 그리고 굉장히 명쾌하면서도 아름답게 다가오는 주제라는 점에 관해서는 그래도 여전히 잘 해 냈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브리가 아직까지는 표류하고 있다고 하는 분들도 있으실 줄로 압니다. 사실 과거 경향과는 뚜렷한 차이가 그렇게 확 띄는 것도 아니면서, 이 상황에서 작품이 확 좋아 보이는 것도 없을 수도 있는 그런 작품들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작품에서 소탈함과 아름다움에 집중을 하신다면, 오히려 이 작품이 굉장히 잔잔한 느낌으로 좋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P.S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애들용 작품이 아닙니다. 유머도 성인용이고, 이야기 자체가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겁니다. 애니메이션이라고 모두 아동용일 거라는 생각을 버리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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