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신건 프리처 - 현실에 짓눌리긴 했는데, 그 현실이 너무 강하다 횡설수설 영화리뷰

 뭐, 그렇습니다. 이번주에는 이 두 편이 다 입니다. 다음주에도 꽤 많은 영화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개봉하는 상황인지라, 한동안은 좀 호흡 조절이 위주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워낙에 다양한 영화들이 줄줄이 나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있고 해서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이제서라도 개봉을 한다는 것이 상당히 기쁜 일이기는 했습니다. 워낙에 보고 싶어했던 영화였으니 말입니다.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이런 영화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때는 결국에는 들어가는 부분이 꼭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실화가 주는 무게감이라는 부분이죠. 실화가 주는 무게감이라는 것은 허구의 영화에 어떤 매력을 심는가 라는 점에 관하여 가장 좋은 해답이 되기도 합니다. 많은 영화들이 허구에 좀 더 많은 무게감을 실어주기 위해서 실화를 베이스로 한 영화라는 베이스를 강조하곤 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 실화가 주는 힘이라는 것은 결국에는 그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이는 결국에는 영화가 직접적으로 그 한계를 드러내기 전에, 스스로 그 한계에 갖혀버리는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꺼낸 이유는 결국에는 이 영화가 그 실화가 주는 무게감이라는 것에 관해서 그 한계를 드러내 버린 영화라는 겁니다. 물론 이 뒷 배경에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은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이야기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결론이라는 부분만 말 하자면 스스로의 무게에 짓눌리는 듯한 그런 영화가 되었다는 겁니다.

 이 영화는 대단히 복잡한 지점이 여럿 충돌하는 영화입니다. 기본적으로 영화적인 재미라는 지점과 앞서 말 한 영화가 베이스로 가지고 가고 있는 실화에 관한 무게감, 그리고 이 와중에 끌어 내야 하는 주제의식과 영화적인 흐름이 대단히 격렬하게 부딪히는 영화이기 때문이죠. 사실 이 모든 지점이 등장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영화는 결국에는 그 모든 것들을 한 번에 담아내야만 하는 상황으로 스스로 내 몰고 가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어떤 현실감을 주고자 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그 현실감은 영화의 영상에서 올 수도 있고, 영화에서 보여주는 여러 캐릭터들의 생동감에서 올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보여주는 그 두 부분이 합쳐져서 보여지는 부분일 수도 있는 것이죠. 이 모든 거은 결국에는 영화가 관객에게 다가가는 힘으로서 비쳐지는 부분들이기도 합니다. 이로서 이 영화가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던져주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 영화의 상황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이 영화에서의 기본이 되는 이야기는 한 가정을 이루는 한 사람이 결국에는 누군가를 구하고 싶다고 생각을 하면서, 그 상황에서 주변의 상황들이 그에게 도저히 우호적이지 않게 돌아가는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 일을 하는 것에 관하여 그 상황과 대단히 가까이 있는, 심지어는 주인공보다도 가까이 잇는 사람들은 그 것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까지도 밀려가고 있죠.

 이 상황에서의 충돌은 영화에서는 굉장히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결국에는 주인공이 옳았음을 직접적으로 증명을 하는 것을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도 가능하니 말이죠. 그 무엇보다도, 그 일을 하는 실제 사람은 아직까지도 살아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충돌이 현실의 오버랩이라는 것과 연결이 되어서, 의외로 영화적인 힘을 대단히 많이 빼 버리고 있다는 점이 이 영화에서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 해서, 이 영화는 현실의 힘에 영화가 압도 당해 버린 상황이 된 것이죠.

 영화에서 긴장을 일으키는 방법은 굉장히 다양합니다. 영화에서 악다구니를 쓰건, 아니면 누구를 위협을 하건, 노려보건, 그 상황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이건 간에, 참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에서 끌고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게 됩니다. 문제는, 영화는 이 상화엥서 단 한가지, 거의 계속해서 악다구니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악다구니는 분명히 긴장을 일으키는 방식이기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람을 대단히 지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한 번 간단하게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현실 속에서 누군가 처음 악다구니를 쓰면 굉장히 무섭습니다. 저 사람 왜 저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보통은 그 밑에는 공포가 깔리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그걸 계속 보고 있으면 슬슬 짜증이 밀려오게 됩니다. 어느 순간이 지나면 저 새끼는 또 시작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강하게 반발을 하는 심리가 발생을 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그런 부분들이 관객에게서 발현이 되게 하는 굉장히 묘한 영화입니다.

 이에 관해서 가장 좋게 표현을 하자면, 관객들은 이 악다구니에 관해서 결국에는 동정표를 주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악다구니에는 분명히 관객에게 어필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 결말까지 가는 여정에서 조금이라도 어딘가로 새 나가게 됩니다, 절대로 관객으로서 이 부분들을 좋게 받아들이기 힘든 그런 것들이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 영화는 그 한계가 분명히 있는 영화이고, 관객이 강하게 포용을 하지 않는 한은 이 동정심이 그다지 거의 생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 상황에서 영화를 직접적으로 가리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실화입니다. 이 영화의 실화는 생각보다 강렬한데, 아무래도 이 영화가 그 실화의 무게를 믿는 부분들이 있는 겁니다. 이 실화의 무게는 생각보다 엄청나죠. 사람이 살고 죽고 하는 것에 관해서, 우리가 당연하게 누렸다고 생각하는 권리들이 전혀 보장이 되지 않는 그런 세계에서 그 당연한 권리를 돌려주기 위해서 분투하는 사람이 주인공인 상황이니 말입니다.

 이 상황은 대단히 절절하게 다가오기는 합니다. 가장 작은 데부터 가장 큰 부분까지, 가족부터 주인공과 전혀 관계 없는 사람들까지 죽 나오게 되는데, 이 사람들은 절대로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하나 발에 차이는 돌맹이마냥 계속해서 문제가 되어 가는 사람들이 되는 겁니다. 는 결국에는 영화에서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힘이 닿는 것이 어디까지인지를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 부분들을 대단히 절절히 보여주고 있고 말입니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 충돌은 결국에는 영화에서 단 하나의 결론으로 가기 위한 엄청난 분량의 갈등입니다. 그 답은 사실 웃기기 그지 없기는 한데, 절대로 이 상황을 겪지 않고는 절대로 말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죠. 이 영화에서는 모든 부분들을 이런 식으로 연결을 합니다. 심지어는 한계에 관해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에 관해, 이 한계가 결국에는 전부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들도 있고 말입니다. 이 영화는 분명히 이 충돌 차제가 대단히 강렬하게 진행이 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이 충돌의 힘을 좀 더 가중을 시키는 것이 바로 현실입니다. 현실의 사람은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충돌을 실제로 겪엇던 사람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영화적인 각색이 들어가 있기는 하겠지만, 그 각색이 있기 전에, 분명히 실제로 한 일들이 있다는 겁니다. 이 영화는 그 면들을 전달을 하는 데에 주력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전달이 성공적인가 하는 점입니다. 앞서서 말 했듯, 악다구니의 연속인지라 대단히 많은 문제가 서서히 쌓이게 됩니다. 이 문제는 결국에는 어느 순간에는 풀려야 하죠. 물론 이 영화에서는 중간중간에 이 악다구니들을 어느 정도는 풀어 주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풀어주는 부분들은 좀 더 약합니다. 말 그대로, 거의 떡밥 수준으로 마무리가 되는 그런 상황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된 겁니다. 좀 더 잘 풀어줘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이는 대단히 복잡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영화가 분명히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마당에, 이야기가 어떤 폭발성을 끌고 가고 있으면서도 그 폭발력을 거의 제대로 발휘를 못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자체는 실화가 가진 무게감이라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영화 자체에서 영화를 풀어나가는 그런 이야기이며, 영화는 영화적으로 스스로 마무리를 어느 정도는 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이 영화는 바로 이 스스로의 마무리라는 부분들을 현실의 무게감으로 가릴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이는 굉장히 애매한 부분이기는 합니다. 관객에게 다가가면서, 적당히 잘 가리기만 하면 관개들도 이런 이야기의 무게가 그 자체로서의 힘을 가릴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으니 말입니다. 이를 효과적으로 하면 굉장히 좋기는 합니다. 영화가 어느 정도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그 한계를 벗어나는 무게를 가져가면서, 그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모든 것들을 완전히 가리기에는 한계가 어느 정도는 있다는 것이죠.

 분명히 이 영화는 한계가 드러나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는 분명히 아주 엉망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영화는 이 부분들로 평가절하를 해 버리기에는 분명히 스스로의 미덕이 분명히 있는 영화이니 말입니다. 이 미덕은 결국에는 이야기의 효과적인 전달 보다는 영화의 충격이라는 것을 관객에게 전달을 해 주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이 영화의 평가가 밀리는 이유는 마로 이 부분 덕분에 발생을 합니다.

 사실 이 한계는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결국에는 쉽게 말해서 영화의 이야기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부분들 때문에 이야기의 힘이 평가절하 되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 속에서 현실의 힘을 그대로 받아내지 못했다는 것이 이 영화의 문제가 되는 점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다행히 이 영화는 그 지점에 관해서 적어도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잘 할 수 있는 점은 그런대로 잘 받아들이게 하는 그런 부분들이 있기는 하니 말입니다.

 결국에는 선택을 하는 상황입니다. 사실 영화 자체의 쾌감으로만 따지면 이 영화는 애매한 구석이 굉장힘 많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이상의 무게감이 있으며, 영와의 무게감이 있다는 것을 적어도 느끼게는 해 주는 영화이니 말입니다. 이 무게감 자체의 전달력은 그래도 그렇게 나쁘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죠. 그리고 이 실화의 무게는 대단히 괜찮게 보여주는 편입니다. 물론 이 상황에서 이야기 해야 하는 것은 결국에는 배우들의 힘이라는 것이죠.

 우선 제라드 버틀러는 자신의 강렬한 부분들을 이 영화에 모두 쏟아붇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 부분들을 비틀어서 영화에 등장을 시키고 있는데, 이 비틀림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다만, 아무래도 너무 한결같다 보니 아무래도 영화 후반으로 넘어갈 정도가 되면 영화에서 그의 연기가 식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좀 더 후반에서 비틀어서 가는 그런 부분들이 있었으면 더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미셸 모나한의 경우는 영화에 등장하는 이유만큼 그녀가 하는 연기도 정해져 있습니다. 사실 어떤 능력적인 부분 보다는 말 그대로 에너지에 관해서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 좀 더 보조적인 에너지 성립을 위해서 주로 투입이 되는 배우입니다. 미셸 모나한은 이런 부분들을 대단히 잘 표현을 하는 힘 역시 이 영화에서 어느 정도는 좀 아쉬운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대로 그녀의 연기는 꽤 괜찮은 편입니다.

 이 외에도 많은 배우들이 눈에 띄는데, 좀 다른 점은 마이클 섀넌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대단히 대단히 강렬한 마스크를 가지고 가면서도 이 영화에서는 그 강렬한 맛 보다는, 오히려 곁다리로 가는 것이 오히려 신기한 점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분명히 이런 지점에 관해서는 배우들을 참 묘하게 선택을 했다 싶은 그런 부분들이 있어서 말입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의 배우들은 대부분 아무래도 마스크의 강렬함이 주로 가지고 가기는 하지만 말이죠.

 이 영화가 좋다 나쁘다라고는 말 하기는 사실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 영화가 분명히 이야기적으로는 에너지 과잉이 지속이 되는 상위 평준화 스타일이 영화인데, 분명히 그런 것들은 그렇게 간단하게 나쁘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과잉의 에너지 때문에 원래 실화가 가지고 있던 에너지 자체에 심하게 누를 끼치는 것은 또 이나라고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우선은 한 번 보고 본인 안에 판단을 남겨두셔야 할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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