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닝: 237호의 비밀 - 설명서는 조심히 봐야 합니다. 횡설수설 영화리뷰

심야 상영이 한 번 지나가고 나면, 작품의 숫자가 마구 올라갑니다. 보통은 하루 밤에 세 편이 올라가는 상황이 주로 벌어지죠. 다만 이번에는 그렇게까지는 벌어지지 않고 두 편에서 마무리가 되는 선이 되었습니다. 사실 이번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보고 싶은 작품들이 더 있기는 했습니다만, 도저히 보러 갈 시간을 맞출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지라, 이번에 그냥 샤이닝 관련 심야 상영만 다녀오고 말았죠.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샤이닝에 대한 해석은 분분합니다. 얼마 전 올린 관객과의 대화 전문 역시 이런 해석적인 부분에 관해서 대단히 열심히 이야기를 했었던 내용을 졸면서 옮겼던 것이죠. 사실 개인적으로는 영화에 관해서 어떤 사회적이나, 심리적 분석으로 영화를 본다기 보다는, 그 영화가 과연 내게 어떤 재미를 안겨줄 수 있는가에 관해서 좀 더 기대를 하고 있는 측면이 더 강하기는 합니다. 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전 기대점에 관해서 오직 재미가 있을 것인가에 관해서 거는 경우가 많고 말입니다.

 
샤이닝은 제게 그런 재미를 안겨준 영화였습니다.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영화였고, 쉽게 소비가 되어서 그냥 스러질 만한 영화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만든 작품이었죠. (전 이 영화가 트위스터에서 잠깐 나오길래 그때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분석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많고, 그 속에서 어떤 분석을 가지고 가는가에 관해서 서로 논쟁을 벌이는 경우 역시 대단히 많았습니다. 이 한 영화에 관해서 세월이 갈수록 더 많은 분석이 따라 붙는 이유도 이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드는 사람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 집요함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 현상에 고나해서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이 현상이 벌어지는 샤이닝이 얼마나 대단한 영화인지에 관해서 역시 이야기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매력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문제가 관객에게 먹혀 들 것인지에 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 하겠습니다.

 
보통 영화가 흥행을 하게 되면 어떤 사회적인 현상을 불러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만큼 영화는 시각적, 청각적인 쾌감을 안겨주는 힘이 강한 예술 스타일이죠. 게다가 대중적인 면 역시 대단히 강하게 나오기도 하고 말입니다. 영화는 그 재미에 관해서 표현을 하는 것을 업으로 삼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영화적인 의도 역시 무지하게 많이 함유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의도를 알아 내려는 사람들 역시 대단히 많기도 하고 말이죠.

 
스탠리 큐브릭은 이런 지점에서 대단히 좋은 재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강박에 가까운 완벽주의적인 특성은 이런 지점에 관해서 수많은 해석을 내 놓을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겁니다. 력구에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대로 무슨 이야기를 하던지간에 결국에는 받아들이게 하는 힘 역시 가지고 있다는 것이기도 한 겁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는 수많은 것들이 한 번에 다 보여지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많은 반복 관람을 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부분들이 자신에게 다가온다고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샤이닝이라는 작품이 공포영화라는 특성 이외에 무엇을 더 함유하고 있을 것인가에 관해서 직접적인 탐구를 진행하는 사람들로서 영화가 진행이 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경우, 샤이닝의 재미에서, 그리고 자신이 봤었던 공포영화가 샤이닝이 의외의 차이를 보이는 점에 관해서 파고들기 시작한 사람들이기도 한 것이죠. 이 사람들은 결국에느 자신이 느끼게 된 점에 관해서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리고, 자신만의 답안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이 답안이 무엇이 될 것인가 하는 점은 사실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영화의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에 관해서 결국에는 어떤 방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이 지점에 관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결국에는 영화의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샤이닝 같이 텍스트로 겹겹이 싸여 있는 영화 의 경우는 이 상황이 더 많이 나타나게 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샤이닝은 해석의 여지가 많은 작품이라는 말을 할 수도 있는 것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이 지점이 재미있는 것은, 감독인 큐브릭이 느낀 강박에 관해서 영화를 본 관객들도 이 지점을 느낀다는 겁니다.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관객들에게 이 지점을 거의 그대로 던져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가장 묘한 매력이 발휘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그 에너지를 표현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게다가 이 문제는 이 영화를 이해를 하는 데에 있어서 꽤 유용하게 접근이 되기도 하는 답안들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 답안에 관해서 전 틀렸다, 맞았다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닙니다. 이는 사회현상이자,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봤던 것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나름대로의 답안을 쓰게 만드는 것이니 말입니다. 게다가 이 답안을 받아들이라고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강요를 하고 있는 상황도 아니고 말입니다. 사실 강요를 하기 시작했다면, 그만큼 버거운 것도 없는 것이 자기만의 해석인지라, 이 지점은 결국에는 칭찬을 할 수 밖에 업슨 상황입니다.

 
이 문제는 묘한 지점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뭔가 매력적인 부분이 있다고 길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히려 웃기는 일입니다. 샤이닝을 분석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작품인데, 이 속에서 극적인 재미를 찾는 것은 오히려 웃기는 상황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정보 전달형에 더 가까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오직 지금의
 지점에서만 보자면, 이 작품은 분명히 나름대로의 매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습니다. 작품이 어디로 흘러가건간에, 결국에는 스스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대단히 잘 보여주고 있는 데다, 그 만큼의 보상 역시 작품이 해 주고 있는 덕분에 그 면에서 보자면, 이 작품은 아무래도 작품을 하고서도 자신이 어떤 느낌으로서 이 작품을 접근해야 하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점에 관해서 좀 더 매력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 역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에너지를 사회 현상과 맞물리게 만들 수 있는 정도라면, 분명히 그 작품은 소임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됩니다. 이 작품은 그만큼의 에너지를 잘 가지고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사실 이 문제에 고나해서 더 길게 표현을 하는 것 보다는, 아무래도 이 작품은 나름대로의 해답지를 또 하나 보여준다고 말을 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에 관해서 대단히 잘 표현 하고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문제는, 과연 이 해답지가 작용되는 역효과가 무엇일까 하는 점입니다. 사실 전 이 지점이 아무래도 지금 설명하고 있는 자궆에 관해서 가장 불편하게 만드는 부분이라고 생각이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이 작품은 스스로의 특성에 관해서 어떤 표현을 한다기 보다는, 다른 작품에 고나해서 그 칭송을 하면서, 그 수많은 텍스트들의 향연을 이야기를 하면서 오히려 작품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과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재미라는 점 말입니다.

 
재미는 오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다른 문제 보다도, 영화에서 재미를 표현한다는 것에 있어서 영화가 결국에는 스스로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관객들에게 그 에너지를 온전하게 전달 한다는 점에 관해서 얼마나 잘 하는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속에서 텍스트가 많은 작품의 경우에는 그 텍스트에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 자신만의 해답을 내 놓는 경우도 상당히 많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텍스트의 해답은 자신이 작품을 이해를 하는 방식으로서 만들어 지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 형성 과정입니다. 이는 워쇼스키 형제가 DVD에서 음성해설을 하지 않는 문제와 비슷한데, 영화를 본 사람들은 자신만의 해석이 있을 테지만, 어떤 사람이 이 지점에 관해서 설명을 한다고 하면, 그리고 그가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결국에는 그 해석에 관해서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결국에는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제한 해 버리는 문제로 연결이 되기도 합니다.

 
사실 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게 좋다 나쁘다 말 할 수 없기는 합니다. 영화에서 해석의 문제는 여전히 분분하기는 합니다만, 남의 해답을 가지고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 역시 가능은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몇몇의 경우는 그 반대로, 그 속에서 자신의 생각이 형성이 되고, 더 멀리 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논술에서 남의 해답지 들춰 보고 거기서 끝나는 상황에 가까운 경우라고 말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되어서 도움이 되면 좋기는 하겠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이 문제에 관해서 가장 골치아픈 경우는 엉뚱한 해석을 받아들이고, 그게 좋다고 생각이 되는 경우입니다. 말 그대로 스탠리 큐브릭의 의도보다는 자의식 속에서 어떤 의심의 씨앗에서 자라기 시작한 의도를 영화에서 만들어 감으로 해서 영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점 말입니다. 이는 대단히 어려운 부분들일 수 밖에 없으며, 결국에는 관객들이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이 문제가 간단치 않은 또 하나의 이유는 사실 의도 자체가 열려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해석 자체는 하기 나름이며, 자기 입맛에 맞는 해석을 만들어 내는 것도 영화를 즐기는 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 지점을 아예 제한을 해 버린다는 데에 있습니다. 영화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자체로서 어떤 차단의 효과를 맛보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이런 작품의 존재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종의 참고서 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그 속에서 다른 사람들은 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정도의 재미 역시 느끼는 것도 가능합니다. 다만 제 의견에서는 아무래도 이런 스타일의 이야기는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래도 더 조심스럽게 접근이 되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아무래도 영화제에서 주로 공개 되는 작품이다 보니, 아무래도 원래 샤이닝 보다는 훨씬 더 접근하기 어렵기는 하겠지만 말입니다. 일단 재미는 있기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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