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돈나 : 라이크 어 버진 - 마돈나를 학술적으로 보여주는 지루함 횡설수설 영화리뷰

 웃기는 주간입니다. 솔직히 두 작품이 다 간단하게 이야기 될 만한 부분들은 아니라서 말입니다. 게다가 두 편이 나란이 가수에 관해서 이야기 하는 괴상한 주간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게다가 이렇다 보니 할 말이 애매하게 들어가기도 하고 말입니다. 아무튼간에, 적당히 잘 해결을 하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죠. 그나마 재미라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하겠지만, 이 작품이 그래도 가큐멘터리라 말이죠.......

 아무튼간에 리뷰 시작합니다.







 생각해보면 약간 웃기는 사실 하나가
, 전 마돈나 음악을 들은지가 생각보다 오래 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시작한건 아마 Music 엘범이 나왔던 그 시절이 시작이었던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죠. 당시에 마돈나가 컴백 했다는 것으로 아주 난리가 났었고, 그 문제에 관해서 나름대로 꽤 괜찮은 답안으로서 음악을 들었던 기억도 있고 말입니다. 묘한건 제가 뮤직비디오로 그 음악을 먼저 접했다는 사실도 포함이 됩니다. 이 음악에 관해서는 확실히 충격적인 이야기가 많았죠. 국내에서는 그 나이대 가수가 그렇게 최신 스타일을 선도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말이죠.

 
하지만, 마돈나는 팝에 관해서만큼은 여제라고 할 만한 위치에 있기도 합니다. 음악적으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관해서 마돈나만큼 다양하고 강렬하면서도, 확실하고 가장 강렬한 에너지를 가진 가수는 정말 많지 않습니다. 성향이 조금 다르지만 최근의 레이디 가가 정도가 접근하고 있고, 그리고 또 다른 팝의 황제라고 할 수 있는, 지금은 고인이 되어 버린 마이클 잭슨이 그 위치를 가지고 있었죠. 무엇을 보여준건간에, 가장 강렬한 모습이 될 수 있는 사람중 하나였습니다.

 
물론 그녀가 처음부터 그런 모습을 보여준건 아니었을 겁니다. 저같은 사람들에게는 마돈나의 뮤직, 컨페션 온 더 댄스 플로어 같은 음반의 거침, 그리고 최근의 하드 캔디까지의 경향을 보면 정말 충격이라고 하겠지만, 아무래도 최근은 다양성의 시대이기 때문에 뭔가 새로운 것을 끌고 나왔다고 해도 다양한 한 측면이라고 하는 쪽에 더 가까우니 말입니다. 하지만, 마돈나는 과거에 한 현상으로 분류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에너지를 가진 음반의 소유자였습니다.

 
그 이야기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기억에 라이브 에이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형광 노란색을 입고 다니면서 라이크 어 버진을 불렀던 그 시절일 겁니다. 그리고 지금 이야기 하는 음악적인 부분들 역시 라이크 어 버진으로 대변되는 부분들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지금 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제가 이 작품을 보고 느낀 점에 가깝습니다. 평가라고 부를 만한 부분은 후반에 이야기를 하기로 하죠. 그만큼의 이 다큐에 담긴 의미는 마돈나의 첫 번째 변화라고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 작품에서 다루는 것은 라이크 어 버진입니다. 주로 라이크 어 버진 이라는 음반과 그 속에 같이 담겨 있는 동명의 곡, 그리고 같은 음반에 수록된 머티리얼 걸입니다. 이 곡들은 마돈나가 계속해서 변화해 온 이미지 속에서도 어떤 중심을 유지하고 있는 이미지의 한 지점인 동시에, 이 부분에 관해서만큼은 지금까지도 회자가 될 만한 그런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것의 핵심은, 마돈나가 스스로 어떤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했는가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마돈나의 이미지는 불혹의 나이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섹시 아이콘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물질적인 면과 인간에 관한 여러 가지 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임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 굉장히 도덕적인 측면까지도 모두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마돈나가 가져오고, 음반 속에서 구축해 온 이미지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해서는 지금까지도 의견이 무지하게 분분하죠.

 
이 문제에 관해서 가장 묘한 지점이라고 한다면, 분명히 이 모든 것들이 시작이 된 부분들이 있을 거라는 겁니다. 보통은 라이크 어 버진이라는 곡을 꼽게 되고, 그 곡이 얼마나 묘한 곡인지에 관해서 이 작품이 이야기를 하고 있고 말입니다. 이 곡의 단순성 위에서 마돈나가 어떤 이미지를 구축 했는지, 자신의 약점이라고 부를 만한 (물론 당시 기준입니다. 지금은 가창력 논란에 관해서는 그다지 이야기 할 만한 부분이 없으니 말입니다.) 것들을 어떻게 가렸는지에 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마돈나라는 한 가수이자 엔터테이너가 얼마나 기묘하면서도 영리하게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했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는 바로 이런 문제에 관해서 대단히 매력적으로 표현하게 되고 있고 말입니다. 물론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굉장히 분석적이고, 문화적인 측면에서 거의 학술에 가까운 면으로 이야기가 되고 있기 때문에 흔히 말 하는 칭송 일색인 방식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가장 묘한 점이라고 한다면, 이 이미지는 지금에도 유효하다는 겁니다. 다양한 이미지를 지양하면서도, 그 과거의 이미지 역시 잊혀지지 않을 만큼 강렬하다나는 것이죠. 심지어는 최근의 그녀가 열정을 보여주는 굉장히 다양한 것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함에도 불구하고 그때 그 이미지라고 하면서 여전히 회자가 될 만한 이미지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 이미지에 관해서 여전히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저같이 재발견하는 사람들도 있는 상황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 이미지는 결국에는 미디어를 어떻게 이용하는가 하는 굉장히 영리한 면 역시 연결 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이미지의 가장 재미있는 점은 결국에는 마돈나를 이해를 하는 것 보다, 그녀가 그 이미지를 처음 미디어에 드러낸 이후, 그 이후의 미디어의 움직임을 이야기 하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게 더 많다는 겁니다. 그만큼 마돈나가 그동안 드러낸 이미지의 변천은 우리가 아는 음악과 미디어라는 점에 관해서 대단히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현대 가수 치고는 마돈나라는 거대한 이름에 빛을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말을 해야 할 정도로 말입니다.

 
물론 이 당시의 마돈나 이미지는 어딘가 촌스럽다고 이야기를 할 만한 부분들도 있을 지도 모릅니다. 굉장히 과거 이야기도 아니고, 90년대 초 내지는 80년대 말에 생긴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 이미지는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원류를 그대로 본다고 했을 때에는 이미지 자체가 웬지 너무 옛날 느낌이 난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지도 모릅니다. 시대를 뛰어넘는 이미지라기 보다는, 영향을 주기는 했으며, 지금까지 파급력이 있기는 하지만, 재생산 과정에서 계속해서 고쳐지고 있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죠.

 
이게 나쁘다 좋다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이미지가 당시에 어떻게 시작이 되었는가에 가까운 이야기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 것이 음악이라는 것이 시각적인 시스템으로 변경이 되면서 어떻게 시작이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이 문제에 관해서 생각보다 집중 있고 심도 있게 집중을 한다는 점에서 그 매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점에 관해서 음악적인 부분과 시각적인 부분에 관해서 모두 접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자연스럽게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이야기는 마돈나 개인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그녀의 음악적인 커리어의 한 지점에 굉장히 집중을 해서, 그녀의 음악과 퍼포먼스에 관해서 분석적인 접근을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말 하는 전기 다큐멘터리와는 뱡향이 굉장히 다르다고 할 수 있죠. 오히려 공룡 나오면서 그 공룡의 생태를 탐구하는 다큐멘터리에 더 가까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악 다큐멘터리에서 한 가수에 관해 조명을 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특이한 탐구법중 하나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여기서 전혀 새로운 문제가 발생합니다. 마돈나는 분명 시각적으로, 음악적으로, 음악의 의미적인 부분에 있어서 대단히 다양한 평가를 내리고, 그 지점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만한 가수이자 엔터테이너입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 집중을 하는데, 과연 그녀가 이 시절에 이 곡을 가지고 어떤 실험을 했는가에 관해서는 완전히 제거를 해야 했는가는 의문의 여지가 남습니다. 물론 이미지적인 통일성에 관해서 설명을 하기 때문에 만약 지금 이야기 한 부분이 삽입이 되었다면 이야기 자체가 무척 난삽해 질 수도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이미지의 변천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려면 이런 부분들 역시 이야기를 해야 했던 것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이야기를 잘 하지는 않습니다만, 이 작품은 오히려 이야기를 너무 단선적으로, 그리고 너무 집중을 함으로 해서 오히려 작품이 무너진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좀 더 쉽게 말 하자면, 이 작품은 이야기에 한 지점에 너무 많은 집중을 함으로 해서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동시에 너무 중복된 것들이 많은 동시에 그 것들에 관해서 뭔가 변화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겁니다. 흔히 말 하는 과도한 친절의 희생이 되어 버린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길이가 1시간 남짓이라는 것을 생각 해 보면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집니다. 이 작품에서 주요 테마로 다루는 곡은 몇 곡 되지 않습니다. 몇몇 외적인 이야기 빼면 각 곡에 관해서 거의 15분에 가까운 시간이 주어집니다. 보통 전기 영화에서 한 지점에 관해서 집중을 한다고 해도 그 시간은 생각보다 길며, 한 에피소드가 등장해서 그 에피소드가 진행이 되는 데에 이야기가 되는 시간보다 훨씬 긴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에는 그 한계가 이야기의 지루함이라는 측면과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작품 내내 발생 합니다. 이야기 앞에서 흥미를 일으키고, 상당히 독특한 방식으로 작품이 진행이 되기는 하지만, 그 힘을 유지하기에는 너무 집중도가 높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해서 일반인에게 설명한다기 보다는 거의 주입식에 가까운 상황이고 말입니다. 학술 다큐멘터리도 이렇게 하면 지루한게 사실인데, 하물며 음악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이러면 더 고통스러워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은 듯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이 상황에서 화면이 계속해서 반복이 된다는 겁니다. 화면의 재탕은 영화에서도 자주 있습니다. 플래시백이라는 부분으로서 사용을 한다거나, 아니면 뭔가 다른 이야기 이전에 기반으로서 다시 한 번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 정도에서 등장을 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관객들이 새로운 것을 보여달라고 작품에 구걸을 하고 싶어질 정도로 이런 반복성이 심하게 등장을 합니다. 이야기가 그렇게 함으로 해서 더 심하게 지루해짐은 물론이고 말입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대단히 짧음에도 불구하고 정보의 밀도는 나름 괜찮은 편입니다. 하지만 풀어가는 방식과 설명하는 방식은 정말 잘 못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마돈나에 관해서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거나, 아니면 좀 더 학술적이고 분석적으로 작품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 중에서도 시간이 남아도는 분들이 아니라면, 이 작품은 그냥 이런게 있구나 하는 정도로 넘어가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솔직히 별로 볼만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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