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 시각의 강렬함이 영화를 몽땅 삼키다 횡설수설 영화리뷰

 드디어 이 영화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선택 사유는 간단한데, 영화가 엄청나게 화려하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 외에도 고전에 관해서 3D로 나오는 묘한 영화이기도 해서 말입니다. 이 영화를 보는 사유야 이 외에도 수십가지 이다 보니 적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간에, 이번주는 두편인데다 영화가 전부 제각각이다 보니 상당히 즐거워지고 있습니다.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솔직히 그렇습니다
. 개츠비같은 해묵은 테마를 가지고 영화가 다시 나올 만큼 헐리우드 영화판의 아이디어가 바닥을 긴다고도 말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작이 있는 영화, 그리고 그 것이 시각적으로 어떤 매력을 가질 만 하다고 싶은 소설의 경우에는 정말 열심히 영화화가 되곤 합니다. 보통은 이 선상에 걸리는 작품이 몇 가지 유명한게 있습니다만, 개츠비는 이 선상에서 약간 미묘하게 벗어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약간 크게 보기만 한다면 여지없이 위대한 개츠비도 포함이죠.

 
물론 이 작품에 관해서 제가 처음 들었던 생각은 뻔하게 만드는 영화를, 웬지 불안한 감독이 만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잘 만들었다고 이야기 되는 영화도 제 취향이 아닌데다, 잘 못 만든 영화의 경우에는 아예 그 해에 워스트의 한 편으로 제가 꼽을 만큼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기도 하죠. 제 입장에서 오스트레일리아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영화이기도 했고 말입니다. 아무튼간에, 이 영화는 그런 문제가 심각한 영화이기는 했습니다.

 
물론 제가 이 작품을 택한 이유가 있기는 합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재즈 시대가 다시 영화판에 오는 경우는 흔치 않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능력이 있다고 일컬어지는 감독들이 주로 도전을 하고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역시 이 범주에 돌어가는 영화였습니다. 감독은 현재 신성으로 평가받으면서도 어딘가 간간히 불안해 보이는 데이빗 핀쳐였으니 말이죠.) 아무튼간에, 이번 작품 역시 상당히 기본적인 부분에서 예상이 되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바즈 루어만의 에너지는 시각적인 화려함으로 대변되는 면이기는 합니다. 시각적인 화려함과 같이 가는 여러 가지 화면의 매력이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해서 이상하게 스토리가 불편해 보이는 면들도 있고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후자의 문제로 인해서 작품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부분이 있기도 하죠. 물론 이 문제를 떠나서 이번 작품을 봐야 할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애초에 광고부터 감독이 굉장히 스스로가 잘 하는 것을 굉장히 많이 투자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을 해 버렸습니다. 저야 그 예고편으로 작품에 관한 사전정보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말입니다.

 
물론 한 가지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생각 이상으로 오래된, 그리고 나름대로 굉장히 유명한 텍스트를 가지고 작업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텍스트는 이미 과거에 영화화 되었던 적이 있죠. 심지어는 매우 좋은 배우들이 영화에 참여를 한 적도 있고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무엇을 새로 보여줄 것인가가 영화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영화에 국한에서 보는 부분이죠.

 
심지어는 이 작품의 원작은 명작 소설로 출간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피츠제럴드가 이 작품을 쓸 때 워낙에 오탈자가 많았기 때문에 그 문제에 관해서 작품이 완간이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는 했지만, 그런 가십에 가까운 부분들을 완전히 배제 하더라도 사람들의 상상 속에 무언가 이미 들어가 있는 것이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제가 항상 이야기하는 축약의 문제 역시 이 작품 속에서 등장하고 말입니다. 결국에는 이 작품이 부딪히는 문제는 한두가지가 아니며, 이 모든 것들을 해결해야만 답안이 나온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재미있는 점은, 감독의 비쥬얼에 관해서는 이미 최고로 인정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 비쥬얼은 특수효과로 인해서 퇴색이 되는 면모가 있기는 했습니다만, 여전히 그 이상의 이야기가 진행이 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컴퓨터가 모든 일을 해 주는 바람에 이제는 무슨 화면이 나와도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컴퓨터로 만든 뭔가 평범하다고 이야기 하는 특수효과 이상의 비쥬얼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미 아바타와 휴고로 경험을 한 바 있죠.

 
게다가 이 작품의 배경은 재즈 시대로 대변되는 풍요와 허영이 넘치는 시대였습니다. 어느 정도 감정적인 골이 있고, 곪을 대로 곪아버린 부분들 역시 있습니다만, 그 면을 가릴 만한 엄청난 풍요와 낭비의 향연이 작품에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겁니다. 이 작품에서는 그 부분을 극대화 해서 보여줍니다. 물론 여기에는 감독이 잘 하는 것을 약간 변형해서 보여주는 방식으로 가는 것들도 있고, 그리고 현대에 맞게 다시 재단이 된 부분들도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한 가지가 더 발생합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당대의 사회상을 이야기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그 사회상을 그대로 표현하게 되면 영화는 사극의 요소를 가져가게 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죠.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야인시대 시절 정도쯤 될까요.) 이 시대를 과연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이 영화의 진정한 표현법인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 시대에 관해서 우리는 분명히 굉장히 화려하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동시에 범죄가 얼마나 범람하고 있었는지 역시 알고 있는 것이죠.

 
이런 상황의 특성은 결국에는 원 시대를 표현하는 것과 이 작품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과 어느 정도 마찰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에는 관객에게 그 이야기를 전달하고, 그 전달에 관해서 얼마나 효과적인 부분을 건드릴 것인가가 모두 연결이 되는 것이죠. 이 작품은 그 와중에 매우 현대적인 표현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해서 작품이 선택하는 길은 매우 화려하고, 동시에 현대의 사람들이 잘 알 수 있는 것들을 그대로 끌어들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죠.

 
이 부분에 관해서 가장 쉽게 설명을 하자면, 영화상에 등장할 수 밖에 없는 개츠비 집에서 벌어지는 파티 장면입니다. 이 파티장면은 과거의 재즈시대를 표현 할때는 매우 밝은 금빛과 화려한 춤이 수놓는 시대이기는 합니다만, 결국에는 과거의 모습이죠.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자리에 요즘에 우리가 흔히 클럽에서 듣거나 볼 수 있는 것들을 사방에 배치 해놓았습니다. 결국 이 문제에 관해서 영화는 대단히 현대적인 특성을 가지고 진행이 되는 것이죠.

 
물론 여기에는 3D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장치가 더 들어가 있음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3D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색이 좀 더 많이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감독이 알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평소보다 훨씬 더 화려한 색으로 무장한 영화가 된 것이죠. 물론 이것들은 이 영화가 보여주는 화려함의 단면입니다. 이 면들은 영화 내내 작용이 되면서 동시에 이 세계에 관객들이 발을 들여놓게 하는 힘까지 지니고 있습니다.

 
이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훌륭합니다. 시대에 관해서 이 정도로 시각적인 화려함을 자랑하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름다움과 항락이라는 것을 관객에게 이해 시키는 현대적임과 당시의 시대가 모두 공존한다는 것을 작품 내내 보여주는 화면과 음악이라고 할 수 있죠. 이 문제에 관해서 관객들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을 베풀게 됩니다. 문제는, 이 비쥬얼이 스토리를 흔들어놓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이 문제에 관해서 영화가 직접적으로 논하는 부분까지 존재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문제에 관해서 가장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결국에는 주인공의 친구라는 사람들입니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 친구들은 이미 자신들의 영역에서 찌들대로 찌든 사람들이죠. 심지어는 그 와중에 비틀린 순수함을 지니고 있는 개츠비를 파내서 받아들이지 못 하게 하는 지점까지 가면서도 말입니다. 이 영화는 그 인간에 관해서 역시 다루게 되는데, 전반적으로 워낙에 강렬하다 보니, 이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에 대한 관념은 약간 윤색이 되어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작품이 결국에는 사람에 관해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는 부분인데
, 이 작품에서 그 화려함 속에 서로의 인간관계의 파열음은 오히려 음악의 비트에 모두 뭍혀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이 속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 방식을 이야기 하기는 했습니다만, 동시에 이 문제는 영화 속에서 오히려 그 이야기 자체를 섬으로 만들어버리는 부분으로 작용을 하기도 합니다. 결국에는 영화 자체가 분리가 되어 가는 느낌이 있다는 것이죠.

 
가장 크게 이 문제가 부각이 되는 것은, 결국에는 각자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 부분에서, 서로가 그것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도달을 했을 때입니다. 이 도달점에서는 오히려 비쥬얼이 한 발 후퇴를 하는데, 이미 이 지점까지 와서는 비쥬얼이 할 수 있는 힘을 모두 발휘 했다는 느낌이 더 큽니다. 스토리는 거기서 한 발을 더 내딛어야 하는데, 그 뒷심이 영 부족해 보이는 부분들이 영화에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힘이 제대로 발휘가 안되는 것 역시 문제가 되고 말입니다.

 
물론 이 영화의 스토리와 인간관계가 그렇게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사랑과 소유에 관한 소재는 상당히 볼만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비틀린 순수로 대변되는 개츠비 역시 상당히 재미있는 느낌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를 전달하는 캐러웨이의 인간적인 시점 역시 상당히 독특한 분위기가 존재합니다. 스스로도 타락을 알면서, 동시에 여기서 깨달음과 인간에 대한 지겨움을 모두 터득하는 매우 재미있는 캐릭터죠. 하지만 영화는 이 모든 것들이 그다지 살아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확실히 해야 하는 것은, 이 캐릭터성이나 이야기가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분명히 좋은 이야기고 나름 괜찮은 라인을 가지게 하는 힘 역시 가지고 있죠. 문제는 이 영화의 비쥬얼은 웬만한 영화는 모두 쌈싸먹을 정도의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 비쥬얼에 스토리는 몽땅 가려버렸고, 이 속에 같혀서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죠. 결국에는 두 힘이 균형이 맞았다면 더 매력적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물론 배우들의 연기는 매우 매력적입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오래만에 매우 매력이 철철 넘치는 남자로 나왔고, 토비 맥과이어는 스파이더맨 이후에 오랜만에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었다는 느낌이 드는 배역을 맡았죠. 캐리 멀리건 역시 스스로의 매력을 굉장히 잘 드러내는 힘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말이죠. 심지어는 조엘 에저튼의 경우에는 과거에서 현재에 떨어진 인간상을 하고 있습니다. 매력 역시 상당하고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라면 합격점을 줄 수 있다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관에 간다는 것이 매력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라면, 이 영화는 적어도 그 매력 하나는 확고한 영화라고 할 수 있죠. 상당히 시청각적으로 볼만한 영화이고, 큰 극장에 어울리는 매우 화려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인간의 깊이와 다양한 관계에 관해서 깊이 들어가는 영화를 원하신다면 이 작품은 미묘한 구석이 있을 수 밖에 없음은 미리 말씀 드려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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