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 이것은 에너지다 횡설수설 영화리뷰

 이 영화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감도 안 오실 겁니다. 개인적으로 이 마스터라는 영화의 기대 이유는 다른 것 보다도 감독 때문이었죠. 제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후에 같은 감독의 영화인 데어 윌 비 블러드라는 영화를 연타석으로 보고 얼마나 많은 충격을 받았는지는 감도 안 잡히실 겁니다. 아무튼간에,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이 다시 영화를 만들었는데, 개봉이 늦었다는 사실이 좀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죠.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제가 폴 토머스 앤더슨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들은 영화는 다른 영화가 아니고
, 바로 이 영화 직전에 있었던 데어 윌 비 블러드입니다. 당시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외에 엄청난 영화들이 줄줄이 나왔고, 21세기 초에 벌써부터 세기의 걸작이라고 할 만한 영화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에, 이 반열의 선봉에 서는 영화였으니 말입니다. 심지어는 국내에서 이 시기에 나온 영화중에 몇 안 되는 국내 정발 블루레이 출시작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물론 폴 토머스 앤더슨의 이름 하나만 들어도 좋아하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제가 보다가 보다가 포기한 매그놀리아라는 매우 걸출한 작품도 만들었고, 부기나이트라는 약간은 기묘한 영화 역시 만든 적이 있죠. 이 영화들을 뽑아냈을 때 감독으로서 이미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영화가 아무래도 걸출한 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흥행과는 거리가 좀 있다보니 아무래도 영화 찍을 돈 구하기 힘든 감독이라는 약간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제가 제대로 본 영화이자 거의 유일하게 감독의 영화중 제대로 본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영화인 데어 윌 비 블러드가 상영 되었을 때, 전 극장에서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래저래 겨우 접하게 되었을 때 정말 땅을 치고 후회를 한 기억이 있습니다. 이 영화를 왜 굳이 극장에서 보는 것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었죠. 물론 당시에는 제가 집에서 가까운 극장만 갈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여의치 않았던데다, 제가 깊이 있는 영화를 어려워 했던 때이기도 합니다. 결국 그 이후에 보게 되었던 거죠.

 
아무튼간에,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제가 영화 지평을 또 한 번 넓히게 된 또 한 번의 도약점이었습니다. 당시에 이 영화는 초장에 거의 대사가 없던 것으로, 그리고 등장 인물들 역시 거의 없던 상황에서도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에 대단히 좋은 효과를 보여줬던 영화로 기억이 되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 보여줬던 재미는 절대로 제가 흔히 알던 것이 아니었으며, 이 상황에 관해서 대단히 신선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죠. 게다가 이 영화에서 보여줬던 주인공의 연기는 정말 무시무시했고 말입니다.

 
솔직히, 이 영화 이후로 다시는 이런 영화가 안 나올 줄 알았습니다. 보통 이렇게 크게 나오고 나면 영화가 절대로 잘 되기가 힘든 상황이 되기도 하고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반만 되어도 이제 영화는 그다지 크게 문제가 없겠다 라는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을 정도의 영화가 탄생을 해도 걸작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게다가 폴 토머스 엔더슨은 그동안 앞서 말 한 흥행의 문제로 인해 영화판에 다시 등장하는 것이 매우 힘들기도 했고 말입니다.

 
보통은 이런 예상이 맞아들어가게 마련입니다. 하나의 큰 지점을 거치고 나서는 대부분이 하강 곡선을 그리는 경우가 많은 데다, 다음 작품은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경우도 상당히 많기 때문입니다. 이건 어떤 예술 작품이건간에 비슷한 문제가 있게 마련이죠. 보통은 전작의 테이스트 때문에 강렬한 색 변화를 감당하지 못한 관객들이 하는 이야기가 대다수이기는 합니다만, 이 정도로 걸출한 감독이라고 하면 그 예상이 거의 맞아들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전혀 다른 영화를 들고 나왔는데, 여전히 강했던 거죠.

 
이번에 폴 토머스 앤더슨이 들고 나온 영화는 상당히 기묘한 영화입니다. 두 사람이 중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죠. 한 사람은 정신적으로 상당한 문제가 있는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일종의 사이비 의료업자입니다. 솔직히 사이비 의료업자라기 보다는 교주에 더 가까운 사람입니다만, 이 영화에서 교주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보니 이쯤에서 대략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해서 좀 더 할 이야기가 더 많고 말입니다.

 
이 영화에서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은 사실 굉장히 간단한 문제이지만, 해결하기 상당히 힘든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심각한 감정 기복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인 동시에, 그 사람이 알콜중독이기까지 한 상황이니 말입니다. 게다가 이 사람이 만든 술은 거의 폭탄주에 환각제를 섞은 독극물에 가까운 물질이죠. 더 웃기는건, 이 것에 관해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은 이 술이 대단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이 사람이 중심이 되어서 첫 시작을 끊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사람이 그나마 군대 내에서는 문제가 별로 없다가, 정신적인 문제로 군대에서 나와서 사회에 나온 뒤로는, 점점 나락으로 빠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죠. 이 상황의 가장 기묘한 점은, 바로 이 사람을 고치는 데에 앞서 소개한 또 한 사람, 사이비 의료술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이 둘의 기묘하기 짝이 없는 관계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에서 사이비 의료술사는 굉장히 착한 사람인 것 같은 겉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말 역시 영화 내내 사근사근하게 하는 편이며,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려고 하는 모습을 만드는 사람으로 영화에 비춰집니다. 이 사람은 그렇게 함으로 해서 상대가 상당히 편한함을 느끼고, 그 속에서 어떤 치유 되었다는 느낌과 신기한 느낌을 동시에 받아들임으로 해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흔히 말하는 플라시보 효과를 매우 잘 일으키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죠.

 
문제는 그가 다루는 지점에 관해서 이 영화는 매우 현실적으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이 사람이 행하는 일이 절대로 진짜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가 정신적 문제가 있던 주인공에게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 이야기가 방향이 전혀 달라지고 있는 상황이 됩니다. 오히려 이 상황에서 주인공은 편안함을 느끼고, 스스로를 고치고 있다는 느낌이 직접적으로 들고 있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죠. 이 영화는 그 괴리를 계속해서 보여줍니다.

 
상당히 웃기는 점이라고 한다면, 이 상황에서 치료해 주는 사람이 사이비만 아니라면 매우 평범한 치유성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지점도 많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줄거리에 대단히 충실하게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점도 있고 말입니다. 물론 이 영화가 예측할 수 없는 줄거리를 가지고 진행이 되는 영화가 아니라, 그 속에서 보여주는 대단히 내밀한 심리들을 보여주는 데에 능숙한 감독이 만드는 영화라는 점에서 그 특별함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반드시 한가지 확인 하고 가야 할 지점은, 주인공이 내내 관객에게도 그다지 치유가 많이 되었다는 느낌을 많이 주지 않는다는 것에서, 후반부에 갑자기 그가 인간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이 생긴다는 겁니다. 이 영화에서는 그가 왜 그런 성격이상을 지녔는지에 관해 보여주고, 그에게 어떤 노력을 쏟는지에 관해 영화가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상황인지라, 이 변화는 상당히 놀랍게 드러나는 면들이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몇 가지 다른 심리들이 들어가게 됩니다. 주인공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며, 술이 들어가거나 자신의 아픈 곳을 건드리면 확 터지는 성격을 지닌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준다는 겁니다. 애정이 갈래야 갈 수 없는 모습을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죠. 과거에 시계 태엽장치 오렌지에서 보여줬던 주인공은 그냥 개새끼로서 등장을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현실에 있는 매우 찌질한 개새끼라는 인상을 준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영화가 무엇을 중심에 두고 있는지는 점점 드러나는 지점이 결국에는 그 사이비 치료술사와 그들의 가족이 가지고 있던 의견과, 그들이 하는 행동에서 드디어 일이 등장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발전은 바로 여기서 보여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제가 주변 인물들에 관해서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사이비는 비록 사이비일 지언정 인간적인 노력을 정말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 상황에서 그 사이비 마져도 자신에게서 무언가 다른 지점을 발견하게 되는 지점까지 갑니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무엇을 행했는지, 그리고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영화가 이야길르 하는 상황이 된 것이죠. 이 영화의 재미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영화가 관객에게 대단히 잘 전달한다는 점과, 그 지점에 관해서 관객이 비록 불편해 하는 점이 있을 지언정,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까지는 절대 가지 않는다는 영화의 강렬함이 영화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죠.

 
결국에는 이 모든 것들 속에서 영화가 진행이 됩니다. 그리고 이 진행에서 가장 특별한 점은, 역시나 영상입니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영상은 전작만큼이나 삭막하지만,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야 하는 점에서, 특히나 따뜻하고 아픈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야 하는 지점에 관해서는 대단히 영화가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이 감정은 영화에 주된 키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심어줘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 영화는 그 지점을 거의 120%로 해내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사람들이 움직이는 배경 역시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매우 일상적인 공간에서 모든 것들이 진행이 되고 있죠. 아주 극소수의 몇몇 장면 외에는 이런 경향이 지속이 됩니다. 하지만 같은 공간을 보고 있고, 같은 사람을 마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공기가 변화하는 지점에 따라 이 공간은 대단히 다르게 보이는 미묘한 맛이 있습니다. 이 변화의 에너지는 관객이 직접 인식하는 것으로, 관객들이 그 재미를 느낀다고 할 수 있는 지점과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 부분들이기도 합니다.

 
보통 배우들 연기 이야기는 거의 안 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해야 할 듯 합니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과 호아킨 피닉스는 이 영화에서 스스로 보여줄 수 잇는 것의 모든 것을 거의 뛰어넘은 그런 연기를 보여줍니다. 호아킨 피닉스는 스스로 무엇을 벗어나야 하는지 깨닫는 사람인데, 그의 평소 행실을 보면 대단히 미묘하게 다가오는 부분들이 있죠, 또한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은 자신의 확고한 마스크를 집어던지고, 또 다른 에너지가 넘치는 연기를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 웬만하면 한 번 꼭 찾아 보셔야 할 영화입니다. 비록 좀 야하고 매우 폭력적이기는 하지만, 성인쯤 되어서 스스로가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지점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1년해 한 번 쯤은 이런 영화를 접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영화입니다. 대단히 강렬한 영화이며, 에너지라는 것이 액션 영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굉장히 멋지게 증명해 낸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거침 없는 묘사에 관해서는 조금 염두에 두셔야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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