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 스펙터클을 이용해 인간의 깊은곳을 건드리는 영화 횡설수설 영화리뷰

 새 주간이 왔습니다. 그리고 가장 미묘한 주간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다른것보다도 이번주에 개봉하는 영화 대다수가 매우 걸출한 영화가 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그 중 몇편을 골라내야 했으니 말입니다. 물론 다행히 해결방법이 어느 정도 나온 상황이기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안 봐도 되는 것이라고 하기에는 유명한 영화가 너무 많이 나와서 말입니다. 게다가 궁금해하던 영화 하나가 또 개봉을 앞두고 있어서 더 미묘하네요.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기대점이자 가장 큰 불안 요소는 바로 감독입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정말 대단한 감독이기는 하지만, 구작들을 생각해보면 절대로 그냥 기대된다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죠. 물론 최근작 두 편은 생각해보면 그다지 크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 이전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는 파이라는 나름대로 잘 만든 작품으로 데뷔를 하긴 했는데 매우 불친절하고 어떤 면에서는 이상한 영화였죠. 그 이후인 레퀴엠 포 어 드림 역시 만만한 작품이 아니었고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크게 데였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이 있으니, 바로 파운틴, 그러니까 국내 제목으로 천년을 흐르는 사랑 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제가 영화를 처음 접하기 시작해서 인터넷의 선악 구분을 잘 못 하던 시절에 접한 기억이 있는 영화인데, 이렇게 이야기 하기는 좀 뭐하지만 이해 불가, 생각 불가를 외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영상은 굉장하긴 했는데, 그 영상마져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의 향연은 중고생에게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던 것이죠.

 다행히 그 이후에 더 레슬러라는 작품과 블랙 스완 이라는 작품으로 제가 드디어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는 영화가 나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는 했습니다. 다만 더 레슬러의 경우에는 작품성은 인정을 하는데, 도저히 두 번 볼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죠. (제 취향의 문제도 있지만, 이 영화는 당일 컨디션이 최악일 때 본 리뷰를 한 최초의 영화이자, 제가 레슬링을 정말 싫어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이후에 블랙 스완 역시 두 번 보기는 정말 힘든 영화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블루레이를 구비해야 할 정도로 취향을 이기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제가 대런 아로노프스키를 힘겨워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정말 좋은 이야기를 가지고 정말 좋은 영화를 만들기 때문에 절대 안 볼 수 없게 만들기는 하는데, 영화 자체는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과잉으로 흐르는 경우가 정말 많은지라 영화를 버텨내기가 정말 힘들었다는 겁니다. 제가 주변에 영화쪽 지인들에게 주로 하는 이야기가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과잉을 컨트롤 하는 데에 도가 텄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도 사실 이 문제 때문입니다.

 노아 역시 위에 설명한 문제들로 인해서 고민이 많았던 영화입니다. 정말 대단한 화면을 보여줄 거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배우들 역시 절대로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기 때문에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영화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존에 아로노프스키의 영화를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영화가 기존에 알고 있는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것도 알고 있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결국에는 이 영화에 관해서는 이래저래 이야기를 복잡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겁니다.

 물론 배우진만 보면 이 영화는 정말 대단한 영화가 될 수 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로건 레먼이나 엠마 왓슨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 영화에 러셀 크로우, 제니퍼 코넬리, 레이 윈스턴, 안소니 홉킨스 같은 배우들이 줄줄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땡기는 일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 와중에 닉 놀테나 프랭크 란겔라 같은 걸출한 노장의 이름들까지 보이는 상황이다 보니 이 영화를 더 피하는 것이 힘들어져 버린 것이죠. 그래서 아예 아이맥스로 보러 가기로 했고 말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전 기독교인입니다. 아무래도 기독교인으로서 그동안 들어온 이야기가 있는 만큼 이 영화가 흔히 말 하는 사전 지식이 없다거나, 아니면 소위 말 하는 믿음 관련해서 문제를 삼는 분들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저는 이 영화에서 그 이야기에 관해선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지만을 서술할 것이며 최대한 기독교인의 시각을 빼려고 합니다. 다만 의식적으로 빼려고 해도 어느 정도는 자유로울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은 미리 인정하고 가야 할 듯 하네요.

 아무튼간에, 이 영화의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세간에 잘 알려지다시피 신이 노아에게 세상을 정화시키려 물로 벌을 할거니까 방주를 만들라고 하고, 노아는 그 방주를 만드는 이야기죠. 다만 이 와중에 벌어지는 몇가지 이야기는 이 틀에서 파행할 수 있어 보이는 이야기들입니다. 다만 큰 틀은 변하지 않으며, 말 그대로 세상이 물로 인해서 거의 멸망에 가까운 단계를 밟는데까지 가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거의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어쨌든 살아남은게 있다는 이유입니다.)

 이 영화에서 성경의 반영분은 어느정도인가에 관해서는 솔직히 논란거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국내 기독교의 형태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어떤 관점에서 영화를 보는가에 따라 기독교인이 아는 노아의 이야기를 영화에 맞게 어느 정도 재변형을 거쳤다는 말을 할 수도 있고, 어떤 면에서는 거의 신성모독이라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는 부분이 있기도 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주로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노아의 이야기를 영화에 맞게 각색을 한 것이라기 보다는 전반적으로 노아를 베이스로 거의 다른 이야기를 재창조 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전 그냥 각색의 힘이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아의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는 매우 판타지적인 이야기입니다. 세상이 멸망하는데 동물들을 한쌍씩 모아 물에 뜨는 거대한 상자에 태워놓고 세상을 홍수로 쓸어버린 다음 그 정화된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이야기이니 말입니다. 이 이야기의 가장 큰 문제라면, 성경에서는 성스러움과 인간이 선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에 관해서 역설해야 하지만 영화는 나름대로의 흐름과 굴곡이 있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게다가 노아의 이야기는 굉장히 다양한 영상화 버전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노아의 이야기가 순전히 해석에 관한 문제라고 하고, 노아의 인간적인 면모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분명히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죠. 이 영화는 그 아이디어에 착안한 듯 합니다. 이 속에서는 흔히 말 하는 신이라는 요소를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동시에 그 신의 수하라는 것, 그리고 인간의 존재라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그 존재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서 여전히 신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기독교의 이야기를 각색하기는 했지만, 핵심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며, 신이 모든 것을 예비했고, 인간에 관해서는 선택의 역할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황이라는 것을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인간의 의지라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신의 존재와 그의 무한한 힘에 관해서 역시 여전히 이야기를 한다고 할 수 있죠.

 위에 설명한 두가지, 그러니까 각색의 문제와 신에 관한 문제를 동시에 다 가져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놀라운 일입니다. 다만 대런 아로노프식 해법은 굉장히 특별한 구석이 있는 것이죠. 이 두 가지의 절충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을 정말 영화에서 과잉에 가까울 정도로 끌어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화 자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일종의 도전 의식까지도 보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영화는 정말 모든것에 관해서 강하게 밀어붙이는 힘이 있습니다.

 다만 이 영화는 두가지 구분을 보여주고 있기는 합니다. 신이 벌을 하기에 나름대로 피할 방법을 찾는 사람의 모습을 앞부분에 보여주고, 그리고 그 와중에 인간의 타락을 보고 나서, 그 타락으로 인해 자기 자신과 자기 주변 사람들 마져도 파괴해야 한다는 내부적 압박을 이야기 하는 두 부분으로 나뉘고 있는 상황이죠. 물론 이 상황에서 타락한 또 다른 인간의 의지에 관해서 이야기 하는 면도 있고 말입니다. 이렇게 보자면 세가지 이지만, 영화가 중심으로 다루는 것은 두 부분으로 볼 수 있기는 합니다.

 이 영화에서 이 문제에 관해서 매우 깊은 탐구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입니다. 이미지 자체가 그 탐구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상황이며, 이미지의 강렬함을 만들어내는 데에 있어서 굉장히 능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다, 그 이미지 역시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니 말입니다. 심지어 몇몇 특정한 이미지의 경우에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혐오스럽고 강렬한 부분까지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죠. 사실 이 문제에 관해서 제가 힘들어하는 것도 이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매력에 관한 점은 인정을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대단하죠.

 이 영화는 홍수라는 것에 관해서 규모의 미학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도 매우 능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은 사람들과 큰 상자라는 것에 관해서 (제가 방주를 상자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이건 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규모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고, 이 와중에 도와주는 존재에 관해서 역시 대단히 흥미로운 모습을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죠. 이 영화는 영화상에서 눈에 드러나야 한다면 그 미학을 표현하는 데에도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동시에 그 의미를 표현하는 데에도 굉장히 열심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이 모든 것들을 설명한다고 해서 이야기가 절대로 흩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매우 많은 설명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설명이 향하는 곳은 단 한 곳이며, 이 문제에 관해서 영화는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으며, 동시에 이 희망의 문제와 주인공의 고민을 병치시킴으로 해서 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과정은 매우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쉬운 상황이죠.

 물론 후반에는 스펙터클보다는 좀 더 심리적인 문제를 더 강하게 떠안고 가는 상황입니다. 인간의 타락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부분과 그 타락을 정화하기 위한 한 사람의 고민이 같이 등장하고 있죠. 이 고민으로 인해 다른 누군가는 타락을 떠안고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이라면 악이 설파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현대의 개발을 이야기 하는 모습과도 이야기가 되고 있다는 겁니다. 흔히 말하는 모든 것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와 비슷한 모습이죠.

 이 문제에 관해서 악의 모습은 의외로 매력이 있는 편입니다. 선과 악이 거의 동일선상에 놓이며, 심지어는 어떤 면에서 선이 가는 매우 슬프고 암울하기 짝이 없는 문제로 인해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감이 안 올 정도로 뒤섞여버리는 모습까지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에선 방주에 탈 수 있었던 몇 사람들이 강조하고, 극도로 강렬한 모습으로 영화에서 관객에게 드러내게 됩니다. 이 영화의 매력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죠.

 물론 이 영화는 이렇게 해서 흔히 말 하는 영화적인 스펙터클의 공식을 완전히 깨버리는 형태로 움직이는 상황이 되기는 했습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홍수로 모든 것들이 떠내려가는 화면은 일반적인 블록버스터에서는 거의 클라이맥스라고 말 할 수 있을 정도의 강렬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이 영화에서는 그 다음 과정으로 가는 또 하나의 길목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죠. 이 지점에서 영화가 그냥 일반적 블록버스터일 거라는 생각을 가지신 분들에게는 지루함으로 가는 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매력은 영화 후반에도 지속됩니다. 앞서서 이야기 했듯이, 이 영화에서는 캐릭터의 에너지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한 인간의 이야기 역시 굉장히 비중 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 모습들을 표현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상황이죠. 이 영화는 그 모습을 굉장히 잘 잡아냈습니다. 덕분에 이 영화에서 어떤 캐릭터이건간에 강한 힘을 보여주는 동시에 가져야 할 모습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만드는 면이 있는 상황이죠.

 물론 여기에는 연기의 힘도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러셀 크로우의 연기는 말 할 필요도 없고, 레이 윈스턴의 악역 역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강렬함을 영화 내내 선사하고 있습니다. 제니퍼 코넬리 역시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말입니다. 다만 놀라운 것은, 이 영화에서 의외로 로건 레먼이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겁니다. 어떤 면에서는 가장 인간의 고민을 잘 표현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다른 걸출한 연기자들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솔직히 말 해서, 한 번 쯤 겪어볼만 하기는 하지만, 각오를 해야 하는 영화입니다. 스펙터클을 보여주고 또한 잘 활용하기는 하지만 다른 면 역시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으며, 종교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그 외의 특징 역시 가지고 있으며, 영화의 특성을 잘 알고 있기는 하지만, 역시나 과잉을 기막히게 컨트롤 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구성 했습니다. 다만 어떤 면에서는 보는 사람의 인내와 깊은 생각을 요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이 지점을 대비하지 않으시면 영화가 매우 힘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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