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슬립 - 인간의 구원, 그리고 공포 요즘 출판된 소설 까기

 스티븐 킹의 책입니다. 제가 정말 무턱대고 좋아하는 소설가중에 하나이고, 리뷰를 쓴다는 것에 대해 가장 까다로워 하는 작가중 하나입니다. 물론 이 경우에는 글이 다 비슷비슷해서 그렇다기 보다는 아무래도 제가 흔히 말 하는 팬심을 제어하기가 쉽지 않은 부분들이 있어서 말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과거 글들을 보면 대략 어떻게 문제가 진행되는지에 관해서 보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그래도 진행은 해야죠.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스티븐 킹 작품을 이야기 하면서 어떤 작품의 속편을 이야기 하는 일은 거의 없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거의 모든 작품이 세계관을 공유하거나, 서로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말 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어떤 시리즈가 되었다고 말 하기는 조금 어려운 면들이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국내 출간에서 정말 심하게 헤매고 있는 다크타워 시리즈는 제외입니다. 솔직히 이 시리즈는 한 번 따로 재난으로 다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국내 번역 출간이 늦은 편입니다.) 아무튼간에, 꽤 독특한 작품이라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샤이닝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중 하나입니다. 물론 제 블로그에 아직 소설 샤이닝에 관한 리뷰는 없습니다만, 영화판에 관해서는 굉장히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샤이닝의 경우에는 제가 스탠리 큐브릭 박스세트를 구매하게 되면서 관심을 가진 케이스이기는 합니다. 아무래도 이 영화를 먼저 봤고, 대체 원작 소설이 어떤 작품인가에 관해서 굉장히 궁금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죠. 사실 이 문제에 관해서 스티븐 킹의 큐브릭판 샤이닝에 대한 언급이 상당히 박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하기도 했습니다.

 스티븐 킹이 하고 있는 영화판 샤이닝에 관한 언급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닙니다. 원작이 가지고 있었던 느낌과는 전혀 다르며, 자신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식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반복되어 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가 스탠리 큐브릭을 스티븐 킹이 개인적으로 싫어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못을 박아둔 상태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는 합니다.) 심지어는 영화가 너무나도 마음에 안 든 나머지 직접 또 다른 영화를 만들어 내기까지 했습니다. 참고로 문제의 작품은 스티븐 킹의 샤이닝이라는 제목으로 시중에 나와 있으며, 원작에 매우 근접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갑니다. (다만 영화 자체는 좀 허술합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주인공이 작가로서의 자전적인 모습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 문제는 일단 작품을 보는 사람으로서는 그냥 주변 이야기일 뿐입니다. 독자와 영화 관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온갖 잡음이 있건 없건간에, 일단 그 영화와 소설이 재미있는가가 중요한 문제이니 말입니다. 특히나 장르적인 특성을 매우 많이 타는 작품들이기 때문에 재미와는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 재미를 보고 있는 사람이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죠.

 샤이닝 소설은 그 재미를 굉장히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영화보다 훨씬 더 풍부한 요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이로 인해서 영화와는 전혀 다른 공포가 느껴지는 소설이기도 했습니다. 긴장감과 급박함이 서서히 나타나면서, 한 사람이 슬슬 무너져가는 모습을 굉장히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과정에서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는 뜨겁다는 느낌이 더 적절하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소설이 굉장히 거대한 결말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닥터 슬립의 출발점은 바로 그 샤이닝의 결말입니다. 그 큰 일들을 겪는 사람들이 드디어 행복을 맞았다 라는 식의 결말인 것이죠. 물론 당장은 행복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겪은 어린 아이가 과연 어떻게 성장했을 것인가에 관해서 궁금증이 들만한 사건들이었죠. 이 작품은 그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잭 토런스의 아들인 대니 토런스가 나이가 들어서 자신의 일을 하면서 먹고 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겁니다. 이 작품에서는 그렇게 해서 또 다른 비슷한 능력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죠.

 이야기의 구조상 이번에는 완전한 공포라고 말 하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대니 토런스는 그동안 나이가 들었고, 후유증으로 인해서 알코올 중독이 된 거의 반 폐인이 된 인간으로 시작합니다. 그런 그가 작은 동네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렇게 하면서 술도 끊고 병원에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닥터 슬립”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죠. 죽기 직전 사람들을 편안하게 도와준다는 데에서 이 별명이 붙었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한편으로 이 힘을 가진 어린 아이들을 사냥하는 트루낫이라는 존재가 작품에서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해서 주인공인 대니가 비슷한 능력을 지녔지만 좀 더 강력한 아이인 아브라와 함께 트루낫을 찾아내고, 이들을 막는다는 데에 좀 더 주력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과정에서 공포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방식과 그 에너지에 관해서 좀 더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작품이 가지고 가는 주제는 한 사람의 갱생과 구원에 관한 겁니다. 한 사람이 어떤 문제로 인해서 엉망으로 살아가다가 다른 사람들을 도와줌으로 인해서 점점 더 자신의 모습을 다시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죠. 이 작품은 그 특성을 명확하게 가져가고 있습니다. 주인공 대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통해 남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자신을 좀 더 추스르게 됩니다. 이 작품에서는 그 과정 자체를 상당히 상세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 나름대로의 생각과 자긍심이 드러나는 부분들은 결국에는 그 주인공이 자신의 과거가 엉망이었음을 깨닫고, 그 과거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아버지와는 다르게 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기도 하는 것이죠. 작품에서는 그 지점을 알코올이라는 것을 통해 보여줍니다. 결국에는 알코올중독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고, 결국에는 자신이 잘 하는 것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역할이 되는 것이죠. 이런 과정을 통해서 말 그대로 한 사람이 다시 완성되고 있는 겁니다.

 한 편으로 이 작품에서 나오는 사건들은 굉장히 끔찍합니다. 제가 위에 감상적인 느낌의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는 식으로 설명을 했습니다만, 살인이 나고, 그 문제에 관해서 사람들이 활동하는 것을 서술하는 방식을 보고 있노라면 스티븐 킹이 절대로 허투로 이 작품을 대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굉장히 강하게 받게 됩니다. 작품이 진행되면서 자신의 장기인 음산하고 폭력적이며 무섭기 그지없는 느낌을 살리는 데에 굉장히 강렬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대니와 또 다른 능력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가게 됩니다. 문제의 또 다른 능력자는 자신의 능력을 이옹해서 남을 도와준다는 면도 있지만, 자신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작품에서 이 문제를 이야기 할 때, 그리고 문제의 악당들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할 때는 작품 자체에서 굉장히 폭발적인 에너지를 내뿜게 됩니다. 그리고 클라이맥스로 다가갈수록 상당한 긴박감을 작품에서 가져가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이 작품은 결국에는 매우 다른 두 부분을 스토리적으로 결합해서 진행하고 있는 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느낌을 가지고 가고 있는데, 심지어는 스토리에서는 둘이 중첩되는 부분들이 있기도 하죠. 이 작품에서는 이 속에서 작품의 문체와 분위기를 통해 에너지를 매우 세심하게 선별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작품의 마지막까지 책을 읽는 여정을 해 낼 수 있게 만들어주고 있죠. 그렇게 해서 나오는 결말은 상당한 만족감을 주고 있고 말입니다.

 더 할 말이 많기는 합니다만, 샤이닝의 본격적인 공포와는 사뭇 다르지만, 그래도 여전히 상당히 강렬한 공포가 존재하는 책이라고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공포물이 아닌 만큼, 어느 정도는 작품에서 인간의 따뜻한 면을 매우 강하게 부각시키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서 소설의 쾌감을 굉장히 잘 전달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다른 후속작이 준비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반가울 정도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