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창동 61 X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 : 에카킴 보일스톤 재즈 - 에너지와 재즈 그 사이 빌어먹을 음반과 공연 이야기

 대체 몇년만에 공연 리뷰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살기도 했지만, 최근에 돈이 없다는 문제 역시 한 몫을 해서 말이죠. 다른 것 보다도 벌이가 시원치 않다 보니 영화 보는 것도 전쟁인 경우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인게, 간간히 이런 공연은 걸린다는 것이죠. 덕분에 리뷰를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원래는 이 공연 외에 다른 공연도 많이 보고 싶었으나, 시간을 도저히 맞출 수 없더군요.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재즈에 관해서 먼저 이야기 해야 하는 것은, 아무래도 음악이 거의 실험적인 면을 가져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술성을 중시하고 있고, 듣기 좋은 면을 가져가는 면이 이 장르의 특징이죠. 이 문제는 솔직히 재즈를 고르는 데에 있어서 상황을 절대로 간단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주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에는 이 지점으로 인해서 재즈를 피해가는 면이 발생할 수 밖에 없기도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한 번쯤 즐겨볼 수 있게 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기도 합니다.

 이번 공연의 경우에는 그렇게 고르게 되었습니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들어볼 수 있는 공연을 고르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기는 합니다만, 간간히 바로 들어갈 볼 수 있는 가까운 공연장에서 그런 공연이 발견되기도 하는 것이죠. 이 경우가 그런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그렇기 때문에 약간의 위험 부담이 걸리는 것도 사실이기는 합니다. 그만큼 제가 식견이 짧다는 이야기도 되니 말이죠. 아무튼간에, 이번에 고른 이유는 정말 간단합니다. 쉬운 날짜에 가까운 공연을 고른 것이죠.

 사실 이번 기간에는 4일동안 공연이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몇가지 파편적인 단서를 따라 볼 공연을 고르는 것이 가능하기도 했습니다. 몇몇 단어들이 그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라틴 재즈라는 단어가 공연을 고르게 만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라틴 음악이 재즈와 결합하고 나서도 상당한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는 면이 있는 관계로 해당 지점에서 기대를 하게 되는 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장르가 공연을 보는가 마는가 라는 지점에서 결정하게 만든 면도 있는 것이죠.

 아무튼간에 이렇게 해서 들어가 공연은 기본적으로 의외로 다가가는 공연이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 공연에서 셋 리스트는 우리가 잘 알거나, 그나마 다가가기 쉬운 곡들로 채워져 있었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재즈 틀을 씌우는 정도로 마무리 되는 것이 아니라, 의외로 상당히 본격적인 편곡을 거친 공연을 볼 수 있었다는 겁니다. 우리가 아는 곡들의 변화를 통해서 재즈가 곡을 어떻게 변화 시키는지를 직접적으로 즐길 수 있게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공연이라는 것이죠.

 이 지점은 그렇게 간단하게 가져가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이미 있던 구성을 다시 해체 하는 작업을 해야 하며, 이를 자신들의 스타일로 연주할 수 있도로, 그리고 그 속에서 더 강한 예술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구성을 거쳐야 하는 것이죠.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도 동시에 원래 가지고 있었던 대중성을 어느 정도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이 과정으로 인해서 음악의 기본에 숨겨져 있는 다층적인 면을 더 끌어낼 수 있게 된 것이죠.

 이 지점에서 약간의 아쉬운 소리를 하자면, 이번 공연에서 라틴의 느낌이 아주 잘 살아난다고 말 하기는 어려운 셋 리스트를 가져가고 있었다는 겁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곡을 두 곡 편곡해서 가져왔고, 다른 한 곡은 아예 아리랑이었으니 말입니다. 아리랑의 편곡은 제가 듣기에는 라틴의 느낌이 살아난다기 보다는 오히려 재즈 기본이 가진 블루스의 특성, 특히나 뉴올리언즈 초기 재즈의 느낌에 더 가까운 느낌을 살리는 쪽으로 갔었다는 것이죠. 다른 두 곡의 경우에는 그래도 어느정도 라틴 재즈의 느낌을 가져가고 있기는 합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재미있게 다가오는 것은 두 곡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원곡이 원래 어느 정도 가져갔던 구성을 먼저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고, 그 다음으로는 그 음악을 해체하고, 그 음악에서 가져갈 수 있는 매력적인 면을 가져가고 있는 상황이 되죠. 결국에는 예전 음악에서 새로운 음악을 끄집어내는 힘을 보여주는 힘을 보여주고, 이로서 새로운 새로운 면으로 활성화 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덕분에 상당히 매력적인 음악의 구조를 보여주기도 했죠.

 이 문제에 관하여 또 다른 특성은 결국에는 셋 리스트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공연은 그렇게 긴 공연은 아니기는 합니다. 쉬는시간 없이 80분 진행으로 가고 있는 공연이고, 이로 인해서 음악적으로 하나로 이어진다는 느낌을 주면서도 다양화 해야 하는 상황이죠. 이 공연의 특징중 하나아기도 합니다. 다만 특성상 편곡으로 자신의 색을 더 강하게 드러내는 식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더 강하게 드러낼 수 있는 면들이기도 하죠.

 아무튼간에, 공연의 전반적인 기조는 재즈의 특성을 매우 강하게 드러내는 식입니다. 다만 시점이 언제인가의 문제가 걸리는데, 현대 재즈의 정신 없는 특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식은 아닙니다. 앞서 말 했듯이, 공연장이 잘 갖춰져 있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동네 공연장이라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무턱대고 예술정이 높고 이해 하기 임든 음악을 그대로 연주 하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많은 장소이니 말입니다. 앞서 말 한 부분인 셋 리스트의 기본적 친숙한 면에 관해서 어느 정도 드러내는 것이 이번 공연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연에서 기본적으로 가져가는 느낌은 최대한의 에너지를 쉽게 표현하는 쪽으로 가려고 한다는 겁니다. 공연에서 나오는 곡들은 어느 정도 관객에게 쉽게 다가가는 곡들로 채워져 있고, 편곡도 어느 정도는 편안한 방향으로 가져가고 있기는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연이 어렵다는 마을 할 수 없는 상황이고, 그만큼 듣는 사람에게 평안하게 다가가는 면모가 있는 상황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 공연이 마냥 편안한 것만은 아닙니다.

 공연에서 들리는 또 하나의 특징은 잘 정제 되어 있기는 하지만, 에너지가 정말 흘러 넘칠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강하게 밀고 나가는 면이 있다는 겁니다. 이 과정으로 인해서 관객들에게 흥분을 일으키는 힘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 과정으로 인해서 말 그대로 작품을 즐기는 느낌과, 동시에 음악적인 강렬한 감정을 같이 느끼는 상황이 되는 것이죠. 이 두 가지가 서로 겹치게 되면서 일종의 경험적인 면으로 나아가게 되는 상황이 되고 말입니다.

 이 모든 과정은 음악을 소개하는 면과 연관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은 이 상황에서 최대한 다양한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결국에는 이 과정을 거치면서 음악의 에너지를 전달하는 데에 그 능력이 정말 제대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능력만으로 곡을 밀어붙인다고 말 할 수는 없는 것이, 그만큼 음악의 진행이 있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직접적으로 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전체적인 강렬함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클래스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공연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죠.

 사실 이 공연이 마지막이어서 아쉬운 면이 있기도 합니다. 소개를 하고 있노라면 일종의 자랑처럼 느껴질 때도 있죠. 결국에 기회를 잡은 한 사람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정확히는 아버지를 모시고 갔기 때문에 두 사람이라고 표현해야 하겠지만 말이죠.) 재즈라는 것이 쉽게 다가오면서도 그 에너지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예술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공연이었으며, 에카킴 보일스톤 재즈가 가진 특성 역시 나름대로 엿볼 수 있는 공연이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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