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디맨 - 유령같은 메시지만 남아버린 영화 횡설수설 영화리뷰

 이 영화도 정말 코로나 때문에 구천을 떠돌다 이제야 개봉하는 케이스가 되었습니다. 꽤 큰 기대를 걸고 있던 작품인데다, 이 영화의 오리지널을 얼마전에야 보고서 정말 놀랐던 상황인 만큼, 아무래도 이번 영화가 무척 궁금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이전 영화도 속편이 줄줄이 있는 상황이다 보니, 그리고 그 속편들의 상태에 관해서도 할 말이 많은 상황이다 보니 이 영화를 다루는 것이 미묘한 상황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덕분에 이 영화에 관하여 궁금한 면이 많이 생기게 되었죠.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일단 미리 이야기 해야 할 것 하나, 이 영화의 감독은 조던 필이 아닙니다. 각본가이기도 하고, 제작자이기도 합니다만, 직접 감독읋 한 작품은 아니라는 겁니다. 사실 그래서 살짝 불안한 감은 있습니다. 많은 좋은 감독들이 간간히 직접 감독 하지 않고 제작자로 일을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만, 그 감독들이 직접 감독 하는 영화들만큼 좋으리라는 보장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 말입니다. 스티븐 스빌버그가 참여안 혼갖 미국 드라마들이 정말 완벽한 예라고 할 수 있죠. 다만, 이 영화를 믿게 되는 이유는 감독 때문도 아니긴 합니다.

 그래도 감독에 관해서 이야기를 살짝 해보자면, 국내에서는 두 여자 라는 영화가 알려져 있습니다. 솔직히 국내 공개는 워낙에 작개 해버린 관계로 영화가 보여줬던 강렬함에 비해 많이 덜 알려진 감이 있습니다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작품으로서 이야기가 많이 되는 작품입니다. 당시에 각본가로서도 나쁘지 않은 결과를 내는 데에 성공을 거뒀고 말입니다. 심지어는 이 경력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는지, 디즈니에서 캡틴 마블 차기작의 감독으로 이 영화의 감독인 니아 다코스타를 선택 해놓은 상황이기도 합니다.문제라면, 두 여자 외에는 국내에 알려진 영화가 없다는 것이죠.

 공포 영화가 상업 영화로서의 첫 작품이 아닌 경우은 오히려 독특하긴 합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기획 영화로서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애초에 굉장히 유명한 작품을 기반으로 해서 만든 작품이니 말입니다. 다만, 워낙에 강렬한 1편 이후에, 정말 완성도 면에서 기함할만한 속편들이 줄줄이 나왔다는 것이 문제이긴 합니다. 솔직히 이런 상황에 관해서 나름대로 해법이 있었던 할로윈 이라는 영화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가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죠. 이 영화 역시 비슷한 해법을 차용한 것으로 보이고 말입니다.

 어쨌거나, 캔디맨 1편은 굉장히 독특한 영화였습니다. 캔디맨 이라는 일종의 도시전설로서 영화를 시작하지만, 정말로 참극이 일어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죠. 캔디맨을 말 하면 그 악령이 나타나게 되고, 그 악령이 온갖 끔찍한 일을 벌인다고는 하는데, 영화 자체가 묘한 은유로 차 있다 보니 아무래도 그냥 악령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청신 착란이 부른 참극처럼 보이는 면들도 있더라는 겁니다. 영화가 심리적인 모호함을 유지하는 동시에, 그 와중에도 엄청난 공포의 면면을 보여주는 데에 성공을 거둔 덕분에 매우 잘 만든 공포 스릴러라는 인식이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후에 나온 속편들은 우리가 아는 공포 영화의 공식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는 면들을 보였습니다. 정확히는, 흔히 보는 공포 영화의 공식을 이용해서 영화를 만들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잘 만든 것은 아니었던 겁니다. 덕분에 캔디맨 이라는 무시무시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악령은 그냥 고기 자르는 기계 처럼 취급이 되어버렸습니다. 심지어 3편즘 가면 고기 자르다 고장이 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괴상하기 짝이 없는 행태를 보여주기까지 했죠. 이런 상황으로 봤을 때, 원래의 흐름을 어느 정도 유지한 상황에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긴 했습니다.

 소개 해야 할 배우는 많습니다만, 다른 사람보다도 토니 토드를 이야기 해야 할 듯 합니다. 영화 선택들 잘 하는 배우는 아닙니다. 정말 이상한 영화가 줄줄이 리스트에 추가 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캔디맨 원작에 나와 그 캐릭터를 소화하는 데에 성공한 배우입니다. 덕분에 이후에 정말 많은 공포 영화에 이름을 올리기는 했습니다만, 이 배우가 가져간 독특한 면모는 거의 캔디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이사이에 정말 빛나는 영화가 그래도 몇 개 있지만 말입니다. 이번에 돌아온다는 점 덕분에 더 독특한 것이죠.

 이번에 핵심 배역을 맡은 배우는 야히아 압둘 마틴 2세와 테요나 패리스 입니다. 야히아 압둘 마틴의 경우에는 이미 어스를 통해 제작자인 조던 필과 한 번 호흡을 맞춘 바 있습니다. 다만 얼굴을 제대로 알린건 역시나 아쿠아맨 시리즈죠. 당시에 블랙 만타 역할로서 의외로 상당히 멋지게 잘 나온 배우이기 때문입니다. 의외로 배우로서 연기에 대한 역량도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할만한 상황이라 그런지,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에서도 중요한 배역을 맡은 바 있습니다. 상당히 팔방미인 같은 배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런 경향은 테요나 패리스 역시 마찬가지여서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같은 걸출한 영화에 이름을 올린 바 있습니다.

 이번 영화는 안소니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이 인물은 비쥬얼 아티스트로서 나름대로 새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어릴적 살던 곳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오랜만에 도시에 돌아와서는 오래전부터 떠돌던 괴담을 다시 듣고, 이에 흥미를 보이게 됩니다. 이 괴담은 바로 캔디맨에 대한 괴담이죠. 이 괴담에 관해 추적해 들어가는 동시에, 나름대로 캔디맨을 불러내는 의식을 치르다 보니 점점 더 주변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영화는 이런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공포 영화에 관해서도 상당히 다양한 층위를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비유로서 다양한 이야기를 끄집어내기도 하고, 공포 영화라는 테두리를 이용해서 전혀 다른 장르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다만, 최근에는 공포영화를 이용해서 좀 더 사회적인 이야기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제작자인 조던 필은 그런 사회의 일면을 이야기 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고 말입니다.

 문제는 과연 이야기에서 사회적인 면을 어디까지 끌고 갈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어스는 그 문제에 관해서 좀 흔들리긴 했지만, 공포영화로서 뭘 이야기 해야 하는가를 제대로 끄집어낸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영화를 보면서 공포를 관객이 느끼게 하는 데 까지는 갔으니 말입니다. 어스의 경우에는 사회적인 측면에서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면서도, 이를 공포와 결합하는 데에 성공을 거두기도 했고 말입니다.

 장르의 특성 위에서 사회적인 고발을 한다는 것은 위에 든 두 영화에서 이미 보이듯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장르적인 특성을 기반으로 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매우 쉬운 명제에서 출발하는 듯이 보이지만, 장르적인 면을 메시지가 가리지 않아야 하는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메시지를 너무 뒤로 빼면 그 메시지가 있는줄도 모르는 그냥 편안하게 흘러가버리는 영화로 보일 수 있는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에는 균형을 이뤄야 하느 상황이 됩니다만, 이 영화는 그 균형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캔디맨이라는 신화에 가까운 괴담을 이야기 하면서 시작합니다. 오리지널 영화에서 이야기 되었던 사건을 언급 하고, 이게 어떻게 비틀리고 신화화 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죠. 이 속에서는 흔히 말 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서 단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동시에 이 속에서 흑백갈등이 어떻게 번지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상황에서 캔디맨이라는 존재가 한 시절에는 또 어떻게 등장 해왔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죠.

 이 과정을 통해서 등장하는 여러 특성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 해볼만한 지점들이 있는 상황입니다. 기본적으로 여전히 존재하는 차별의 문제도 그렇지만, 예술가에 대한 시선이나, 그 기반에 깔린 여러 이야기들도 모두 생각 해볼만한 면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에 관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일관되게 연결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그 일관된 방향이 이야기에 제대로 된 에너지를 주고 있지 못하다는 겁니다.

 영화에서 내세우는 이야기는 결국 인종차별과 이에 따른 여러 신화의 발현입니다. 영화의 전작은 이런 지점에 관해서 단순히 관찰자였다가, 그 신화를 연구하면서 점점 더 깊이 들어가다가, 최종적으로는 신화의 일부가 되어버린 한 인물의 이야기 였습니다. 각 단계에서 메시지가 있진 않지만, 심리적으로 어떻게 코너에 몰리게 되는지에 관해서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죠. 이 영화는 그 자리를 사회적인 메시지로 채워넣는 데에 주력했고, 결국에는 그 사회적인 메시지가 영화를 집어삼켰습니다.

 사회적인 메시지와 공포의 결합이라는 것은 결국에는 사회가 주는 공포라고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영화에서는 그 공포의 일부를 응징자로 바라보는 기묘한 시선이 공존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 시선은 영화에서 말 그대로 울분의 핵심으로 연결되는 신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울분의 신화를 통해 구현된 공포를 표현하는 데에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고어를 덜 표현해서 그 공포가 덜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그냥 공포 자체를 표현하는 데에 서투르다는 것이죠.

 이는 앞서 말 한 사회적인 메시지가 차지하튼 자리가 너무 크다는 데에서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공포의 면모를 이야기 해야 하는 상황이 여러 번 있는데, 이에 관해서 공포 장면을 적당히 보여주는 정도에서 마무리 해버리고 이고, 공포의 핵심으로 더 들어가는 데에는 매우 인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장면에서는 단순시 시각적인 충격을 더 강하게 주기 위한 지점으로서만 사용하다 보니 영화가 제대로 된 공포를 불러일으킨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죠.

 주인공이 공포에 맞닿은 지점을 가져가야 하는 상황임에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주인공은 인생에서 여러 지점에서 의기소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캔디맨이라는 존재를 최대한 인생에 끌어들이게 됩니다. 문제는 이 끌어들인 지점에서 감정적으로 관객에게 더 다양한 지점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인데, 그 감정적인 면들에 관해서 새로 만들어내기 보다는, 그냥 메시지로 다시 치환 해버리는 면들을 가져기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관해서 주변 캐릭터들 더 심각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포를 조금이라도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 지점이 등장해야 하는 상황이다 싶으면 곧 공포를 바깥으로 밀어내버리는 모습을 보여주죠.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다가, 갑자기 공포스러운 지점을 맛보기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내 상황을 정리 해버리고 다시 메시지로 가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공포로 다시 치환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메시지가 제대로 된 극영화의 흐름을 탄다고 하면, 그냥 공포 영화가 아닌 잘 만든 영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 영화의 메시지 흐름은 공포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점입니다. 영화 속 사람들의 이야기는 공포와 분명 연결이 되는 면이 있고, 그 공포로 결집하는 면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있는 것이죠. 결국에는 메시지가 어느 정도 양보를 하고, 공포가 제대로 된 방향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했다는 것이죠.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고 말입니다.

 인종 차별에 대한 메시지 자체는 그래도 훌륭한 편입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왜 차별에 들어가는가에 관해서 매우 다양한 이야기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죠. 이 다양한 이야기들이 가져가는 면모들에 관해서, 그리고 각자의 상황에 관해서 나름대로 많은 설명을 하고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각각의 상황들은 적어도 캔디맨의 존재에 관해서 영화가 뭘 내세우려 하는가에 관하여 잘 드러내고 있는 지점들이기는 합니다. 내세우는 데 까지만 갔다는게 문제인 것이죠.

 흐름은 솔직히 한계가 많은 편입니다. 앞에 말 한 여러 가지 것들이 서로 충돌 해버리는 바람에 적어도 메시지가 가져가는 연결점을 잘 가져가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 자체가 제대로 된 이야기 방향을 가져간다고는 말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사상적인 연결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정작 영화가 가져가야 하는 여러 방향성에 관해서는 오히려 신경을 덜 써버린 것이죠. 덕분에 영화가 정작 공포물의 관점에서는 너무 띄엄띄엄하게, 그리고 너무 심플하게 가버린 겁니다.

 시청각적인 면모 역시 욕심을 너무 많이 부렸다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전설에 대한 설명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까지는 잘 해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시각적인 면이 영화에 잘 어울리는가 하면 그건 아닙니다. 공포스러운 장면의 구성은 공포 보다는 혐오에 더 가까운 면모를 드러내고 있죠. 심지어는 살육의 현장의 공포는 너무 소극적인 동시에, 불편하기만 한 면모를 계속해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나마 청각적인 면에서 나오는 공간감을 어느 정도 만들어냈지만 말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생각 이상으로 괜찮긴 합니다. 아히야 압둘 마틴이 가져가는 면모는 생각 이상으로 다층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면서도, 정신적으로 붕괴 해가는 모습을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편집이 전혀 도와주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케이스라고 할 있을 정도죠. 테요나 페리스 역시 비슷한 면모를 가져가고 있고 말입니다. 솔직히 네이산 스튜어트 자렛은 그냥 뻔한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살려내는 맛은 있더군요. 토니 토드는 자신의 캐릭터가 가졌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쪽으로 갔고 말입니다.

 재미 없는 영화입니다. 공포에 메시지를 결합 하는 데에 노력한 것 까진 좋은데, 둘의 균형을 맟추는 데에 완전히 실패 해버렸습니다. 덕분에 메시지만 남아 공허한 울림을 만들어내고있으며, 공포는 잔해만 남아서 사람들에게 불쾌한 면만 선사하고 사라져버리고 있습니다. 인종 차별에 대한 나름대로의 신선한 방식의 설명은 생각 해볼만한 여지가 있지만, 상업 영화로 갈 때 어느 선에서 멈춰야 하는지 고민 하지 않아 생기는 일에 대한 나쁜 선례가 되고 말았습니다.